많은 괴담이 '이건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데'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이야기 속 공포를 경험하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뭉치를 보며 '이렇게 머리가 빠질 리 없어. 사람 하나 더 살고 있는 거 아냐?' 하는 게 공포라면 공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괴담은 참 일상 속에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닫힌 문 너머를 두드린다든가 자려고 누웠을 때 귓가에 속삭인다든가,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쫓아와 휴지를 건네곤 하니까요. 저도 침대 밑에서 정체불명의 다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십 년도 더 전의 어느 여름날 낮이었습니다.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언니가 자던 간이침대 아래 다리가 놓여있었습니다. 다리는 발바닥을 제쪽으로 향한 채 누워있었고, 아주 더러웠습니다. 한참을 응시하다 '누구 다리지?' 하는 의문이 들어 올려다 본 침대 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침대 아래를 보니 다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떠올려보니 다리의 주인을 알 수 없었던 이유는 무릎 위로 잘려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본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저 백일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오싹했나요?

오늘은 납량특집에 걸맞게 등짝에 '불가사리'가 수놓인 한복 로브를 소개합니다. 귀신뿐 아니라 도깨비, 구미호 등등 이야기 속의 괴이한 존재는 다양합니다. 불가사리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괴물 중 하나입니다. 죽일 수 없다는 뜻의 불가사리는 쇠를 먹는 괴물로, 악몽을 물리치고 삿된 것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침대 아래 있던 것이 귀신이든 여름낮의 꿈이든 무시무시한 얼굴로 막아줄 것 같지 않나요.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입니다. 잔인한 장면 없이 잔인한 상황을 납득시켜주고, 보이지 않는 아이와 말하지 못하는 개가 시각과 청각의 미장센들을 부각해주고, 사건과 사람들에 갇힌 주인공 산드라가 놀라운 연기력으로 빨아들여요. 구독자 님의 납량에 어느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2012년 개봉이니까 〈가디언즈〉가 벌써 12년이나 되었네요. 믿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 리뷰를 한 잡지에 기고한 일이 체감상 3~4년 전인 것 같은데 10년이 넘었다니 잠깐 충격을 추스를 시간을 주시겠어요? 네. 기고할 원고는 잡지의 방향성에 맞게 진중하게 썼고, 저 혼자 보관할 원고에는 '잭 잘생겼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써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는 망했지만 주인공은 잘나간다는 씁쓸한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잭 프로스트',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보자면 동장군 같은 판타지적 존재입니다. 산타클로스, 부활절 토끼, 이빨 요정 등 근본 있는 판타지 캐릭터들의 무리 '가디언즈'에 마지막으로 근본 없는(?) 잭이 합류하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가디언즈의 임무는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지키는 거예요. 부기맨 빌런이 아이들에게 자꾸 악몽을 심고 다녀서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잭 프로스트의 미모를 내세웠지만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괜찮고 영상미도 훌륭합니다. 네이버 영화 평점도 9.18점이나 된다고요. 잭이 잘생겼다 한들 주인공 캐릭터 얼굴만 가지고 평점이 9점을 넘을 수는 없다고요. (말투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를 애정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억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망한 건 개봉 전 영상 유출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거든요. 영화 재미있고 잭 잘생겼거든요!)

잭은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자신의 배경을 모릅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 겨울의 정령이 된 것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아는 것이라고는 잭 프로스트라는 이름뿐인 그는 소년의 얼굴로 소년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며 방황합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은 마음으로 두고, 임무는 임무대로 수행하지요. 아이들을 열심히 지켜나가요. 이 영화는 잭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쓰고 보니 유치한 것도 같습니다. 사실 영화가 디테일하게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10년 전의 저의 취향을 믿어보겠습니다. 어쨌든 잭의 얼굴은 지금 봐도 시원시원합니다. 영화를 다시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