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夏至) 💥 하지엔 뭐 하지? 구구절기 읽지!

열 번째 절기, 하지입니다.

2024. 6. 16.

🦖아르마딜로: 하지라는 이름 때문인지 자꾸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에 비해 몸은 따라주지 않네요. 그래도 구구절기를 통해 주변을 좀 둘러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구구절기로 기력충전하지!

오늘의 절기! 하지(夏至)

1.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 하지의 햇살 한 자락
2. 🦉부엉이의 나름대로 레시피 - 제철 맞은 여름 카레
3. 🐆치타의 사적인 감상 - 겁쟁이의 하지 즐기기
4.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 소소하게 다이내믹하지

하지는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장마와 가뭄 대비도 해야 하므로 이때는 일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쁘다. 메밀 파종, 감자 수확, 고추밭매기, 마늘 수확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하지의 햇살 한 자락

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입니다. 벌써 여름의 절정인 하지에 이르렀네요. 저는 뙤약볕 아래 노릇하게 익어가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갇혀있느라 에어컨 바람 때문에 여름인데도 추위에 떨고 있답니다. 그래서 지친 퇴근길에 해가 지지 않고 반가이 인사해 주는 이 시기에 조금씩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동짓달 밤을 잘라다 님 오신 날에 펼치고 싶다는 황진이처럼 하지의 기나긴 낮을 붙잡아두고 싶어요.

하지만 하지입니다. 길어진 낮은 서서히 짧아지기 시작할 거고 점점 무르익는 더위에 반갑던 태양도 싫어지겠죠. 땀을 식혀주던 에어컨 바람도 살을 떨리게 만드는 것처럼, 구직할 땐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이 막상 시작하고 보면 하기 싫어 죽겠는 것처럼 말이에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날씨보다도 변덕스럽다지만 좋아하던 마음이 변해버리는 건 언제나 쓸쓸한 일이에요. 그럼에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했던 순간은 하지의 저물지 않는 태양처럼 힘을 주곤 한답니다.

오늘은 마음을 위로하는 햇살 한 자락 같은 블라우스를 소개합니다. 언젠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이 얇은 겨자색 블라우스는 바람이 불면 차르르 흩어지며 예쁜 주름을 만들어낸답니다. 넓은 소매통과 시원한 소재로 여름이면 즐겨입는 아이템이에요. 이 옷을 입으면 '오늘도 힘내자'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됩니다.

구독자님은 하지의 태양처럼 지친 순간에 힘을 주는 것이 있나요?

치타의 사적인 감상

겁쟁이의 하지 즐기기

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겁쟁이 치타입니다. 하하하. 저는 겁이 많습니다. 상겁쟁이입니다! 공포 영화를 잘 못 보고 귀신 이야기를 싫어하는 그 겁쟁이 맞습니다. 어릴 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어요. 학교에서 화장실을 잘 가지 못했고, 터널이나 동굴을 지나기 힘들어했고, 잘 때는 정자세로 누워 턱 끝까지 빈틈없이 이불을 꽁꽁 둘렀습니다.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고민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배탈이 자주 나는 것(데굴데굴 구르며 몸부림침), 눈물이 많은 것(뭔 말만 하면 눈물 터짐), 어려 보이는 것(고등학생 때도 초등학생 소리 들음), 그리고 겁이 너무 많은 것(이하 생략)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영원히 겁이 많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알게 되는 것이 늘어날수록 겁이 줄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공포의 주원인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모양이에요. 지금도 어두움이나 큰 소리는 싫어하지만, 화장실을 가야 하면 화장실을 가고 가끔 현실의 슬픔을 잊기 위해 스릴러 영화를 찾아 보기도 하는 평범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상겁쟁이에서 덜겁쟁이가 된 치타의 하지 특집 콘텐츠를 소개할게요. 공포 영화 〈미드소마〉, 환상호러 소설집 〈저주토끼〉, 실루엣 애니메이션 영화 〈프린스 앤 프린세스〉입니다.

어느 기묘한 하지 축제

하지를 맞이하여 큰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하지 배경의 공포 영화 〈미드소마〉를 보았어요. 줄곧 몸서리를 쳐댔으니 좋은 시간이었다고는 못 하겠고, 반쯤 눈과 귀를 틀어막고 보았으니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호불호로만 이 영화를 판단하지 않고 내 의사로 호불호를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호입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불안한 심리 상태인 '대니'는 남자 친구와 그의 친구들을 따라 스웨덴의 어느 마을로 휴가를 떠납니다. 슬픔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환기할 겸 떠난 여행지에서 90년에 한 번 열리는 9일간의 하지 축제 '호르가'에 참여하는데요. 친구들이 하나둘 실종되고, 마을 노인들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기괴한 그림들에 둘러싸여 매일 밤 잠을 청하며 이 축제에 거부감과 의문을 가지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향해 웃고 말 걸고 함께 울어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되며 큰 위로를 받습니다.

축제에서 선정하는 5월의 여왕이 된 대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꽃으로 장식한 드레스와 화관을 착용하고 이 기묘한 축제만큼 기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눈물 같기도, 환희에 가득 찬 듯한 웃음 같기도, 그 모두 같거나 그 모두가 아닌 것 같기도 한. 완전히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거나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것 같은 대니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저는 어떤 콘텐츠를 접하면 메시지를 찾으려 하고,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내가 받아들인 나만의 메시지를 구분해 보는 편인데요. 이 영화는 감독이 뭘 전하려 했는지를 도통 모르겠더군요. '고어'라는 장르에 대한 저의 낯섦 때문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다만 그 장르에 대한 낯섦이 단순히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걸 시각화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더 큰 것 같아요. 이렇게 징그럽고 역겨운 모습을 아름다운 배경을 덧입혀, 하지의 한낮에 찬란한 척 그리는 이유가...? 어둠이라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공포를 뒤집어 밝음이라는 보이는 세상의 공포를 보여주려는 영화적 시도일까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알고 싶어 할수록 장면들이 떠올라서요. (충격적인 장면 보면 꿈에 나오는 편)

나와 함께해 주세요

한편 제가 받아들인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함께함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 사이비 종교 신천지에서 한 사람을 포섭하기 위해 그렇게 공을 들인답니다. 함께 웃고 울고 먹고 시간을 보내며 가족보다 더한 라포를 형성한 뒤 드디어 포교할 때, 타깃이 된 그 사람은 이 메시지가 사이비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나누어온 마음을 부정할 수 없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해요.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가 자식을 잃고 동네 아무 교회에 들어가 통곡하며 눈물을 쏟은 뒤 열혈 기독교인이 되었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도 알지 못하고 듣지 않는 내 슬픔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렇게나 갑자기도 내 삶을 통째로 의탁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요.

슬픔은 대니를 잡아먹었습니다. 벌건 대낮이었고 뻔한 속임수였고 명백히 이상했지만, 대니는 슬펐고, 마을 사람들은 대니를 위로해 주었으니까요. 가장 가깝다 여겼던 남자 친구도 해주지 않던 그 일을요. 결국 대니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자신과 함께해온 사람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모두 버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며칠 보지도 않은 이상한 사이비 집단의 일원이 됩니다.

이토록 따뜻한 저주라면

조금 더 산뜻한 콘텐츠로 넘어가볼까요? 정보라 작가의 환상호러 소설집 〈저주토끼〉입니다. 〈미드소마〉에 비해 산뜻하다는 거지 〈저주토끼〉 자체로만 보면 산뜻은 분명 아니에요. 호러가 산뜻이 웬말.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며 더 유명해진 이 책에는 열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습니다. '저주토끼'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안녕, 내 사랑' '덫' '흉터' '즐거운 나의 집'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재회' 이렇게가 열 개 작품의 제목들이에요. 제목을 하나씩 언급한 이유는 구독자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내용들이 정말 흥미롭거든요. 이 책을 읽은 제 전체적인 감상은 꼭 전래동화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이제 좀 섬뜩한.

'작가의 말'에서 정보라 작가는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특별한 교훈이나 메시지는 없다'며 그저 '오싹한 즐거움'을 느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따라 오싹하게 즐기기만 하기에도 바쁜, 단숨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보따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명한 메시지가 다가오는 순간들이 저에게는 꽤 많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러리라 생각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종 데모에 참여해 왔으며 심지어는 '데모가 취미'라고 말하는 정보라 작가의 시선이 기득권을 향할 리는 없겠지요. 아이들과 동물들과 여성들과 가난한 이들과 선량한 이들을 지켜내려는 잔혹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 진득이 묻어있습니다.

제가 가장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은 단편은 '흉터'였어요. 읽는 내내 내가 속한 세상의 장면들과 소설 속 장면들이 쉴 새 없이 마음속에 갈마들며, 그러는 와중에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읽어 내려간 작품이었습니다. 구독자님의 최애 작품과 감상도 궁금합니다.

해가 긴 날의 그림자 동화

이번엔 진짜 산뜻한 작품 맞습니다. 물론 보통의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그 분위기가 산뜻하다고 보기 어렵겠지만 〈프린스 앤 프린세스〉 자체로만 보면 산뜻이 분명 맞아요. 제가 스무 살 무렵 참 좋아했던 영화인데 〈저주토끼〉를 읽다가 전래동화 느낌을 받은 시점에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셸 오슬로 감독의 실루엣 애니메이션 영화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는 여섯 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섯 작품의 제목을 소개하지요. '공주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무화과 소년' '마녀의 성' '노파의 망토' '잔인한 여왕과 조련사' '왕자와 공주'입니다. 어떻게, 구미가 좀 당기나요? 이야기 자체로도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동화답게 권선징악의 면모가 분명 있기는 한데, '이게 이렇게 진행이 된다고?' 싶어 알쏭달쏭한 웃음이 터질 때도 많습니다. 이번에 저와 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권선! 징악! 엥?'으로 이 영화를 요약해 주었어요.

내용보다 더 환상적인 것은 이 영화의 연출입니다. 다 보고 나서 알았는데 영화 속 캐릭터들을 검은색 종이를 잘라 만들었다고 해요. 가느다란 철사로 관절을 연결하고요. 얇은 유리판으로 된 레이어들 위에 안개 효과를 위해 트레이싱지를 사용하거나 수채 물감을 사용해 부드러운 하늘로 바꾸어주었으며, 일본식 스크린을 위해 거칠게 채색하는 효과도 사용했다고 합니다(출처: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알고 나니 더 멋지네요.

처음부터 소개하려 한 영화는 아니지만 우연히 걸어본 골목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들꽃처럼 반갑게 떠오른 영화입니다. 게다가 까맣게 아름다운 인물들을 둘러싼 알록달록한 빛의 배경들이 하지의 길고 밝은 햇빛과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드소마〉로 불쾌하게 얼룩진 마음속 한구석이 정화되고 있습니다. 햇빛에 세균 살균하듯이요. 모쪼록 구독자님도 특별한 하지를 보내길 바랄게요. 해피 미드섬머!

부엉이의 나름대로 레시피

제철 맞은 여름 카레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으신가요?

저는 카레를 자주 만들어 먹는데요. 정말 자주 만들어 먹기 때문에 질릴 법도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어요. 맛있기도 하고 카레를 만드는 과정 또한 좋아합니다. 그때그때 넣고 싶은 재료들을 바꿔서 넣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손질해 놓은 재료들을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버전부터 고급 버전까지 정말 다채로운 재료를 넣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카레라는 요리 같습니다. 오늘 뭐 먹지? 하며 매일의 식사 고민을 줄여주는 아주 믿음직한 카레가 있기 때문에 고민이 반의반으로 줄어들어서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요리입니다.

절기 하지에 제일 맛있는 채소가 무엇일까요? 감자와 당근 같은 뿌리채소라고 하는데요. 땅속 작물은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확해서 바로 쪄 먹는 햇감자는 포슬포슬하니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눈이 뜨이는 맛이라고 지인에게 전해 들은 이후로 저도 언젠가는 바로 수확한 햇감자를 쪄서 먹어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어요. 이렇게 바로 수확한 것을 먹을 수는 없지만 저도 햇감자를 사서 카레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하지에 거두어들이는 햇감자와 다양한 여름 채소들을 듬뿍 넣은 여름 버전 카레를 만들며 절기 하지로의 미식 여행을 떠나볼까요.

우선 재료들을 사러 집 근처 시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신선한 재료들을 보니 눈이 너무 즐겁습니다. 모두 집에 데려가고 싶지만 꾹 참고 필요한 재료들을 골라봅니다. 감자와 당근 같은 뿌리채소뿐만 아니라 가지와 토마토 같은 여름에 맛있는 채소들도 준비해 줍니다.

재료들이 다 준비되었으면 이제 깍둑깍둑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어요. 저는 작은 크기로 잘라주는 것이 먹기 편해서 작게 준비해 줍니다. 깍둑 썬 재료들 중 감자와 당근같이 조금 더 익혀야 하는 것들 먼저 익히면서 재료가 다 익었을 때쯤 카레 가루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여름 카레의 마침표를 찍어줄 토마토를 약간 넣어줄 건데요. 저는 집에 토마토 페이스트가 있어서 토마토를 썰어 넣는 대신 토마토 소스를 약간 넣어줄 겁니다. 토마토를 넣어주면 새콤한 맛이 돌면서 카레의 풍미를 더욱 살려줍니다. 뭉근하게 끓인 카레가 마무리되면 지난 절기 망종에 사서 냉동실에 얼려둔 완두콩을 꺼내 따끈따끈한 밥을 지어냅니다. 완두콩 밥을 지을 때는 소금을 약간 첨가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망종의 완두콩과 하지감자의 콜라보인 여름 카레가 완성되었습니다.

여름 카레 만드는 법

재료: 햇감자 2~3알, 당근 1개, 가지 반개, 양파 2개, 토마토 2개 또는 토마토 페이스트, 카레 가루

1. 먹기 좋은 크기로 재료 자르기

2. 가장 오래 익혀야 하는 재료부터 익히고 마지막에 카레 가루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뭉근하게 끓이기

*취향껏 닭고기나 돼지고기 등 추가 가능

제철 맞은 재료를 듬뿍 넣은 여름 카레와 함께 구독자님도 이 길고 긴 낮의 하지를 건강하게 지내기를 권해봅니다.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소소하게 다이내믹하지

동네 골목길이 다시금 풍성해졌어요. 커다란 초록 잎이 한가득 눈에 찹니다. 사이사이 크기를 키워가고 있는 호박이랑 토마토도 보여요. 볕 아래에 있을 땐 뜨거움에 짓눌리는 기분이지만, 아직 습도가 높지 않아 그리 괴롭지는 않습니다. 그늘을 찾아 잠시 해를 피해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땀을 식혀주니까요. 불만이 있다면 일터에 모기가 꽤 많아져서 팔다리 여기저기 붉은 자국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신 바깥 기온이 많이 높아서인지 어딜 가도 냉방기를 가동하고 있어서 실내는 오히려 전보다 시원하기도 해요. 낮이 길어서 하루가 길고, 열심히 긴 하루를 보낸 데다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니 어느 때보다 금세 잠에 드는 것 같아요.

미용실에 다녀왔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머리카락이 너무 자라서 미용실 예약을 하려는데, 글쎄 이미 예약이 두 주 앞까지 거의 차있더라고요. 열흘 정도를 참고 참다(아주 답답하고 더웠어요!), 드디어 예약한 날짜가 되었습니다. 미용사님의 다정한 손길을 거치고 나니 다시 가볍고 시원한 상태가 되었어요.

요즘 다니는 미용실은 지금 사는 동네에서 세 번째로 다니고 있는 곳입니다. 처음 다니던 미용실은 다 마음에 들었는데, 저를 담당해 주시던 미용사님이 그만두셔서 다닐 수 없게 되었어요. 한동안은 새로운 미용실에 도전할 마음을 먹지 못해 머리를 아주 길게 길렀답니다. 그다음 다니던 미용실도 잘라주신 결과물은 마음에 들었는데, 계속 가기에 편하지 않았어요. 작은 예약제 1인 미용실이었는데, 두 번째 방문 때 지난번에 잘라주신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똑같이 하고 싶은데 혹시 기억하시는지 여쭸더니 한 달 전 일인데 어떻게 기억하냐고 황당해하신 일이 있어서 민망하고 미안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몇 번 가보다가 매번 처음 가는 미용실처럼 원하는 모양을 말하고 사진을 보여드리는 게 귀찮아져서 포기했답니다

그 후에 새로 도전한 곳이 지금 다니는 미용실이에요. 이제까지 중에 가장 작은 미용실이지만 미용사님이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은 느낌입니다. 머리 모양도 마음에 들고, 어찌나 편한지 이번엔 꾸벅꾸벅 졸다 왔어요. 미용실 가는 게 힘들었던 게 바로 얼마 전까지였는데 희한한 일입니다. 미용실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 화려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 원하는 머리 모양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감,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 움직이지 못한 채로 머리를 맡긴 채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까지 모두 열심히 참아내야 하는 것들이었죠.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잘 모르는 사람의 찰나의 다정함에 변하기도 하는 게 신기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내게 와닿는 시간은 찰나지만 그 따뜻함이 공간에 켜켜이 쌓여있을 테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어요.

마음에 드는 머리를 하고 돌아온 집에는, 절기에 딱 알맞게도 삶은 감자가 집에서 고소한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습니다. 이모랑 이모부가 옆집 감자밭 수확 품앗이 후에 일당 대신 이삭줍기한 감자예요. 타기 직전까지 두어 살짝씩 눌어붙은 흔적이 있어서 더 먹음직스럽습니다. 살짝 식어서 먹기 좋게 따뜻한, 이모와 이모부, 엄마의 다정한 시간이 담긴 감자를 나눠먹으면서 느 집엔 이거 없지? 너 하지감자가 맛있단다 하며 장난을 걸어봅니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밖이 밝아서 여유가 있어요.

이제 하지가 지나면 열대야로 잠들기 어려운 데다 모기가 귓가에서 윙윙 대서 더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지겠지요. 제가 힘들어하는 장마도 올 테고요. 올해 폭염을 걱정하는 말들이 많은 걸 보니 곧 따뜻함이 편안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요. 낮도 점점 짧아지고요. 걱정이 워낙 많아서 쓸데없는 걱정이라면 대학 시절 전공하다 못해 유학까지 다녀온 듯한 저이지만, 거기에 시간을 쓰느라 지금 좋은 걸 외면하면 너무 아까울 것 같습니다. 온통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낮, 여유롭고 밝은 저녁, 편안하고 시원한 밤, 오늘의 따뜻함, 눈앞의 맛있는 감자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구독자님도 소소하게 좋은 일이 가득한 하지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구독자님의 눈앞의 행복에 집중하며 가장 긴 낮과 가장 편안한 밤을 즐기길 바라요.

지난 구구절기 이야기: 망종(芒種)

⚡️쥬피썬더: 항상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 이맘때 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망종이었군요! 가만히 있으면 따뜻하면서도 조금 덥지만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고, 바람을 가르면 행복한 마음이 찾아와요. 망종에는 자전거와 콩국수! 기억해둬야겠어요.

🐆치타: 이브이 진화! 쥬피썬더! 반갑습니다. 요즘 날씨 정말 좋죠! 올해 유난히 미세먼지도 적은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요즘 창문을 무척 자주 열고 있어요. 저도 한때 자전거 참 많이 탔는데, 오랜만에 먼지 쌓인 자전거 안장을 한번 닦고 달려볼까 봐요!

🦖아르마딜로: 하지에 이르니 이제 확실히 여름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다들 좋아하는 여름음식이 있나요? 저는 물냉면!

🐆치타: 망종 때 밝혔듯 콩국수! 압도적 콩국수! 지난주에 '밀란'에 한번 더 다녀온 것에 이어 아예 콩국을 한 통 사왔답니다.

🦉부엉이: 아~!! 물냉면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아르마딜로님이 먼저 말했으니! 그럼 저는 막국수, 콩국수, 밀면, 비빔국수요. 하하!!

🐨코알라: 여름 음식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감자전이요! 땀 뻘뻘 흘리며 감자를 강판으로 갈아 노릇노릇 구워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먹어요.

오늘 구구절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하지(夏至)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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