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면 첫눈에 반하는 이야기가 곧잘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원피스를 즐겨 입는데, 이 원피스는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꼭 참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분홍빛 체크 선과 핏이 눈앞에 아른아른거려서 결국엔 지갑을 열고 말았죠. 지금은 제 옷장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봄가을이면 여기저기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봄에도 많은 곳을 함께할 예정이랍니다.

여러분은 사랑에 빠진 순간을 기억하나요? 그때의 기분은 어떤 감정이었나요?

  

 ♬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

무의식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노래. 이제야 이 노래를 제대로 들어보게 되었는데요. 완연한 봄의 절기 '청명'을 맞아 전라도 구례와 경상도 하동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하루 만에 전라도에서 경상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자연스레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절기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서 '청명'은 맑고 밝다는 의미로 점점 더 완연해지는 봄의 기운에 봄꽃이 만발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매해 4월 초 즈음 벚꽃을 보러 가던 시기가 절기상으로 청명이었구나 하면서 자연의 신비에 또 감명받습니다. 봄꽃이 만발하는 절기인 청명에 저는 산수유가 만발한 구례로 떠나봅니다.

산수유 군락지로 유명한 구례 반곡마을입니다. 마을이 온통 노랑으로 일렁입니다. 산수유 사이사이 위치한 소담한 집들과 계곡이 흐르고 있어 아름다움과 소박함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이었습니다. 한참을 거닐며 봄을 느끼기에 흡족한 시간이었답니다. 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박경리 문학관에 들어서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때부터 전쟁, 독립까지 그 시간들을 살아내면서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고단함과 외로움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무려 25년의 세월 동안 엮어낸 소설 〈토지〉가 다시 한번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지난하고 모진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글쓰기에 매진하셨겠지요.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저의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해요. 이 짧은 글에 구례와 하동을 담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맑고 밝은 청명한 봄날은 어디로든 여행 가기 좋은 것 같아요. 여러분의 봄날 여행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며칠 전에는 정말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길가에 꽃망울이 많이 맺혀있었어요. 이제 곧 봄꽃들이 만발하겠구나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나무에도 새순이며 꽃봉오리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풍성해지기 전에 잘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비교해 보면 재밌겠다 생각하면서 시간을 들여 구경한 후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아까는 귀여운 연둣빛이 점점이 있었다면 이제는 하얗고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해 있지 뭐예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걷던 친구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우리가 꿈을 꾼 건가? 아니면 나무의 이쪽 면과 저쪽 면에 닿는 햇살이 달라서 이렇게 달라 보이는 걸까? 가까이서 확인하니 꽃이 활짝 피어있지는 않았지만, 꽃망울이 터져 꽃잎이 빼꼼히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꽃이 피는 바로 그날임을 느끼니 꽃 선물을 받은 것보다 기쁘고 하루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꽃이 필 것 같지가 않았는데 봉오리를 발견한 하루 안에 꽃이 핀 모습을 보니 마치 마법 같습니다. 나무로서는 하루하루 매분 매초 열심히 힘을 모아 꽃봉오리를 만들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 걸 텐데, 꽃을 피워내기 직전에야 눈에 띄었다가 잠깐 꽃을 피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진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요. 사람의 성장도 종종 그런 식이어서 애달픈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 성과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놀라울 정도로 큰 변화가 느껴지는 것처럼요.

얼마 전 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쯤엔 지금 우리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여전히 진로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이것저것 해온 저와는 달리 친구는 학력도 높고, 학위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성장해온 매 순간 꽃망울이 터졌을 테고, 그 순간엔 변화에 만족하고 모자람 없는 행복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 꽃이 지면 다시금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고요. 반복적으로 성장에 힘을 쏟는 아름다우면서도 고달픈 과정이 꽃에게서도, 우리에게서도 보입니다.

누구나 이맘때쯤이면 할만한 흔한 생각이지만, 우리는 계속 신나면서도 고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니까 매번 하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함께 즐거움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봄나물은 매년 먹어도 항상 싱그럽고 봄 풍경은 매번 보아도 설레니까 반복이 꼭 쓸데없는 건 아니라 믿으면서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청명의 새순처럼, 연약해 보여도 생명력 넘치는 싹이 돋아나기를 바라요.

  

🐨코알라: 아르마딜로의 글을 읽으며 처음으로 새순이 눈에 들어왔던 일이 떠올랐어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사랑이 이런 걸까 생각했었지요. 그때부터 이 시기가 기다려져요. 아르마딜로, 부엉이, 치타에게 특별한 계절이나 절기는 무엇인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