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입니다. 곡우는 봄비가 내리면서 곡식들이 기름지게 된다는 의미의 절기랍니다. 식목일에 심었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잎을 낼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나요? 저는 예전에 시금치를 키웠는데 서툰 실력에도 열심히 자라주었답니다. '곧 먹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더니 웬걸, 벌레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튿날 죄 벌레 먹고 말았습니다. 최근의 반려식물은 피시본 선인장이에요. 웃자라기도 했고 상처 나서 못생겼지만 죽지 않고 함께 해주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잎사귀처럼 파릇파릇한 녹색의 가디건을 골라보았어요. 곧게 뻗은 고랑이 어쩐지 텃밭처럼 보여서 나무를 심는 작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았답니다. 그런 상상을 하니까 가디건이  더욱 푸르고 생기있게 느껴진다고 하면 이상한가요? 그래도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이미 좋아하는 옷이 더욱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마법이 비단 패션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좋아하는 것에 즐거운 상상을 더하면 더욱 좋아질 거랍니다.

영화 받고 책으로 가
에세이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다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다큐에서 접한 내용이 전반부에 등장하고, 중후반부에는 우리가 몰랐던, 더 알아야 할 농문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청각장애가 정상에 대비되는 비정상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다른 문화이고, 그것이 문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 그 세계가 상상이 되나요? 
저는 인구밀도 빡빡한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견 둘과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요. 서울에서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종종 따가운 시선과 반감을 마주합니다. 악의에 찬 비난의 말들도 있지만 악의 전혀 없는 공격도 비일비재해서 여러모로 마음을 지키는 데 힘을 써야 해요. 그런데 파주로 이사 온 지금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사는 느낌입니다. 산책할 때마다 정말 흔하게 환대를 경험합니다. 어머나 멋져라, 예뻐라 하는 칭찬부터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자며 굳이 기다려주는 배려, 좁은 곳에서 마주치면 조용히 거리를 두는 예의가 자연스러운 동네거든요. 사실 환대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시달린 서울살이 덕에 이 배려들이 아주 큰 환대라고 느껴요. 
고작 몇 년, 반려견과의 시간에 일어난 반전에도 이토록 놀라고 감동하는데, 평생의 삶, 부모 자식의 시간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는 얼마나 놀라웠을까요? 이길보라 작가와 아버지가 '데프네이션 월드 엑스포'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느꼈을 충격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통역 없이 직접 농인인 아버지를 대하던 직원, 길에서 수어로 대화해도 눈길 주지 않는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판에 청인이 비주류이고 농인이 주류인 갤러뎃대학 캠퍼스라니...

반짝반짝 다 같이 박수!
이번 글에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았어요. 저에게 들어온 새로운 정보들이 많았고 그 정보들이 가져다주는 감정들도 복잡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의 세계는 이제 이전과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한번 무언가를 알게 되면 다시 그것을 모르게 될 수는 없잖아요. 〈코다〉와 〈반짝이는 박수 소리〉 뒤에 여러분은 어떤 변화를 경험할지 궁금합니다.

사실 수어를 배우고 싶다고도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이 호기심이 무례하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웠는데 '장애'가 아닌 '농문화'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니 기쁘게 수어를 배우고 싶어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요즘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데 저는 스페인이랑 별 접점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그냥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해서 뛰어든 거거든요. 스페인어와 수어가 그리 다르지는 않겠지요?
이제 마무리할게요. 다 같이 박수 한번 칠까요? 아니, 흔들까요? 두 손 펼치고 좌우로 반짝반짝! 참, 영화 〈코다〉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오늘 구구절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곡우(穀雨) 이야기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