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立夏) 🌿 여름이다 vs 아니다. 당신의 의견은?

일곱 번째 절기, 입하입니다.

2024. 5. 5.

🦉부엉이: 어느새 여름 절기의 시작인 '입하'가 다가왔습니다. 여린 나뭇잎들이 연둣빛에서 진한 초록으로 바뀌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요. 벌써 기온이 많이 오르는 날도 있어서 각자의 여름을 잘 날 수 있게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절기! 입하(立夏)

1.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 여름의 문턱을 걸어요
2. 🐆치타의 사적인 감상 - 벌써! 여름입니다! 아무튼!
3.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 여름의 잔상, 파랑
4.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 꽃씨 타고 날아가요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 양력으로 5월 6일 무렵이고 이때가 되면 봄은 완전히 퇴색하고 산과 들에는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또 마당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묘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의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한다. 집안에서는 부인들이 누에치기에 한창이고, 논밭에는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가 자라서 풀뽑기에 부산해진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여름의 문턱을 걸어요

여름의 시작인 절기 '입하'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여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요? 봄의 계절만 생각하며 글을 써오다 벌써 여름이라고 하니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대로 봄을 보내주기가 아쉬워지지만 그래도 여름의 시작이라는 말은 예쁘게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여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뜨거운 열정과 젊음, 청춘 같은 단어가 떠오릅니다. 지금의 저의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자니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기쁘게 삶을 살며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이 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여름의 시작의 문턱에서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저의 최애 장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산정호수 둘레길인데요. 저의 가족이 산정호수 가까이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지나는 동안 자주 방문하면서 이곳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답니다.

위 사진은 호수가 꽁꽁 얼어 붙은 겨울에 찍은 사진입니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꼭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계절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온화한 날씨 속에서 호수 둘레길을 걷는다면 요즘 날씨가 딱이겠죠. 여름의 초입에서 온화한 호수 길을 한번 걸어볼까요. 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돌려면 성인 여자 걸음으로 한 시간 내외 소요됩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저는 한때 이 근처로 이사를 올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너무 좋았기 때문에 살고 싶어졌거든요. 잔잔한 호수가 저에게 큰 휴식과 치유를 주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저는 잘 쉬었답니다. 여러분에게도 애정하는 장소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걷다 보면 곳곳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고 작은 유원지도 있어 아이들이 즐길 거리도 있답니다. 또한 작은 배를 타고 호수에서 유유자적하다가 출출해지면 마음에 드는 맛집에서 배를 채우기도 해요.

저도 걷다가 명성산이 한눈에 펼쳐진 뷰가 있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느껴봅니다. 여린 연둣빛 나뭇잎들이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나무를 보며 봄과 여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참 나무멍을 하다 돌아갈 때가 되면 꼭 들르는 빵집이 있는데요. '백년 단팥빵'이라는 빵집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단팥빵 한 박스를 사면 저의 코스가 마무리됩니다. 이 단팥빵 한 박스에 행복해하시는 엄마를 보는 것이 저의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단팥이 듬뿍 들어 있는 단팥빵을 좋아하신다면 들러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입하와 함께 가정의 달 5월도 시작되는데요. 나들이 가기 좋은 5월에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 길을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치타의 사적인 감상

벌써! 여름입니다! 아무튼!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섯 개의 봄 절기를 지나 어느덧 훌쩍 여름의 첫 절기 '입하'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여름입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입하라니, 아무튼 여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계절의 특징과 경계가 모호해서 더 아리송하지만 저는 지난주 반팔을 입고 출근하긴 했습니다. 방금 전에도 반팔 차림으로 강아지들과 산책을 다녀왔어요.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나요? 저는 봄-겨울-여름-가을 순으로 좋아하는데요. 여름이 네 계절 중 세 번째여서 별로 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톱 3에 들 만큼 좋아하는, 그런 좋아함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세 번째로 엄청 좋아하는 계절 여름을 맞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책 〈아무튼, 여름〉과 〈어린이라는 세계〉,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입니다.

진짜 여름 좋아하는 거 맞아?

좋아하는 한 가지에 대해 집요하게 이야기하는 에세이 시리즈인 '아무튼'의 서른 번째 책 〈아무튼, 여름〉입니다. 사실 저는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아마 유난히 습하고 끈적한 한국의 여름 공기와 잠들만하면 웽 하고 귓가를 후리는 모기의 공격이 주원인이겠지요. 그런데 드디어 만났습니다. 저자는 여름이 가장 좋대요. 여름에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이 많은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여름의 매력들을 잔뜩 알고 있나? 궁금해 읽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의 초당옥수수가 엄청 맛있다는 꿀팁을 얻었고 후텁지근한 여름날의 시원한 맥주의 맛이 궁금해졌고 올여름엔 길가에 핀 여름의 덩굴장미를 유심히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초당옥수수를 제외하면 막 엄청 새롭게 여름에게 매력을 느낄 만큼은 아니었어요. (초당옥수수는 무척 궁금! 진짜 맛있대요.) 게다가 저자가 여름에 한 경험들도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실연과 우울의 경험이 잔뜩 묻어 있는 계절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녀는 자꾸만 여름을 이야기합니다. 여름이 좋다고. 이별했던 날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결핍과 도피의 여름 여행이 잦았지만 그래도. 여름은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여름이 좋다고, 아무튼 여름이라고.

사실 이 책을 읽으면 새롭게 만나는 세계는 여름이라기보다 여름을 좋아하는 어떤 이입니다. 그리고 그걸로 좋아요. 무언가를 집요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 있으니까요.

다시는 어린이를 무시하지 마라

올해 입하와 어린이날이 같은 날이랍니다! 5월 5일이에요. 월요일. 빨간날. 좋은날. 이런 좋은 날에 읽으면 딱 좋은 책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그냥 글 자체로도 재미가 있고(저자가 편집자 출신, 독서 교실 교사=글을 잘 씀), '어린이'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울 수 있어 의미도 깊습니다.

'노키즈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곳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초보자를 지칭하는 '무슨무슨 린이'(이를 테면 헬스 초보에게 헬린이, 주식 초보에게 주린이)라는 표현은 어때요? '어린이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다'는 말의 맹점이 무언지 알고 있나요?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분이라면 내 마음처럼 펼쳐지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무척 좋아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알쏭달쏭한 분이라면 명쾌하게 밝혀지는 진실을 보며 아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전혀 모르겠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알게 되는 기쁨에 매우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구구절기 원고를 앞두고 잠시 다시 훑어만 보아도 좋았어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다시 읽어볼 예정입니다. 책 날개에 적힌 글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을 예고편 삼아 여러분에게 전해요.

어린이날에는 누구나 새싹 모양 배지를 달았으면 좋겠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양육자이건 아니건 누구나. 배지를 달아 어른들은 어린이날을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배지를 단 어른들은 이날 하루 마주치는 어린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좋겠다. 문을 열어 주거나 차례를 양보하거나 하는 다소 유난스러운 친절도 베풀면 좋겠다.

어린이 대 어린이로서, 배지를 단 다른 어린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여자 어린이, 남자 어린이, 장애가 있는 어린이, 피부색이 다른 어린이, 키가 큰 어린이, 작은 어린이, 모두가 모두를 알아보면 좋겠다. 서로 존중하며 힘을 합쳐야 할 동료 시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껴 보면 좋겠다. 모든 어린이에게 특별한 날이 되도록 해 주자. 이날만은 어린이가 보호자 대신 다른 어린이의 손을 잡게 해 주자.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뒷날개

여름, 여행, 설렘

여름날 떠난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상상, 해보았나요? 저는 구체적으로 상상하거나 그러길 바란 적은 없지만 그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 경험을 진하게 한 지인의 이야기를 함박 웃음 지으며 들은 적도 있고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 시작되는 '비포' 시리즈도 꽤나 좋아합니다(처음으로 자막 없이 본 영화가 바로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은 개봉하자마자 영화관 달려가서 봄). 그리하여 "그 여름 잊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여름 휴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이 영화를 보지 아니할 수 없었어요. 제목도 설레는 〈테스와 보낸 여름〉입니다.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떠난 소년 '샘'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소녀 '테스'를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여름에, 휴양지에서, 소년과 소녀가 만난다는데, 게다가 그 애들이 아주 엉뚱한 애들이라는데! 어떻게 이 영화가 재미가 없을 수 있겠나요? 가족들 중 막내여서 언젠가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을 때를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을 시작한 샘이 매일 두 시간씩 늘려가며 혼자 있는 연습을 하다가 결국 도대체 몇 명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 어이 없는 웃음이 파하하 터지고 이어 따뜻한 깨달음이 잔잔히 흐릅니다. 외로움에 적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혼자 있기가 아니라 함께 최대한 많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서, 그게 너무 좋아서요.

〈테스와 보낸 여름〉을 볼 때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네덜란드어입니다. 영화를 볼 때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듣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있는데 이 영화는 배경이 낯선 휴양지여서 그런지 그 점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하나는 테스의 알록달록 옷차림입니다. 테스는 시종일관 원색의 옷들을 입는데, 그냥 원색이기만 한 게 아니라 거기에 꽃무늬가 한가득, 물방울무늬가 한가득, 백조가 한가득 채워져 있어요. 그게 꼭 테스에게 가득한 엉뚱함과 사랑스러움처럼 느껴져서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답니다.

이상으로 입하 기념 사적인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참, 새로운 계절의 기운이 일어서는 시점이니 가벼운 결심을 하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기력이 좀 달리는 편이라 좋아하는 만큼 잘 못 해서, 올여름엔 사람들을 조금 더 만나보려 합니다. 지난주에 좋아하는 작가님의 전시회에 갔다가 그곳에 방문한 다른 분까지 해서 셋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꼭 짧은 여행을 한 것처럼 좋은 에너지가 차올랐거든요. 이미 스타트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 기운을 여름 끝까지 잘 가져가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행복의 기운을 보내요. 해피 썸머!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여름의 잔상, 파랑

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입니다. 구구절기를 시작한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나 여름절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름에 들어선다는 의미의 입하입니다. 그래서인지 낮의 해도 점차 뜨거워지고 수풀의 녹음도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입하를 입속으로 굴리듯이 되뇌어보세요. "이파, 이파" 하고 부서지는 발음이 어쩐지 청량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이팝나무가 꽃을 피워 참 예쁘던 게 생각납니다. 여름입니다.

여름 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나요? 타오르는 태양의 빨강? 여름휴가로 떠난 바닷가의 노란 모래색? 이것저것 떠오르겠지만 저는 파랑이 먼저 떠오릅니다. 여름 하면 덥다는 감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한색의 대표격인 파랑이 연상된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도, 반대로 당연하게도 느껴집니다. 여름을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잔상처럼 파랑이 번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햇빛에 오래 노출된 책과 간판 등은 파란색이 오래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외선은 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크고 파괴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때 파란색은 장파장인 붉은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단파장을 흡수하는 붉은색이나 노란색에 비해 덜 파괴되며 상대적으로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관념 속의 여름도 햇빛을 많이 받아서 파랑만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패션은 파란 원피스입니다. 선명한 파란색이 사람들 틈에서도 눈에 띄어 잔상을 남기곤 합니다. 보고만 있어도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여름이 오면 곧잘 입게 됩니다. 어쩌면 여름마다 파랑을 떠올리는 데에 이 원피스가 한몫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푸르기 때문에 여름인지, 여름이 와서 푸른 것이 끌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역시 여름은 파랑입니다.

여러분은 파란색을 좋아하시나요? 파랑에서 무엇이 연상되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꽃씨 타고 날아가요

곡우의 글에서 비에 꽃이 떨어져 꽃향기가 옅어지는 걸 안타까워했어요. 취소합니다. 떨어진 것보다 더 많은 꽃들이 피어서 산책길이 향긋해요. 날이 더워지고 물비린내가 강해지기 시작해서 걷기 곤혹스러워질 때쯤 어마어마한 향기가 덮쳐옵니다. 달콤하고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향기예요. 봄의 끝자락은 향기롭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망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매년 일어나는 일인데도 깜짝 선물을 받은 것 같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곡우 이후로 한낮에는 여름 같은 날이 많아졌어요.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할 때도 있지만 얇은 웃옷으로 충분히 떨칠 수 있는 정도의 한기입니다. 이맘때는 옷이 얇아져 몸도 가볍고, 그렇다고 너무 덥지도 않아 참 좋아요. 바깥 풍경에서도, 내 속에서도 생기가 느껴집니다. 열심히 움직이면 땀이 슬쩍 났다가도 바람 한 번 불고 나면 금세 식기도 하고요. 아직 날벌레도 많지 않아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이제 입하 이후로는 일교차도 없어지고, 뜨거운 기운이 강해지는 여름이 오겠지요.

여름이 오는 건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중 하나는 여름에만 여는 동네 냉면집입니다. 곡우 직전 더위가 조금씩 느껴질 때쯤 열어서 추석 즈음까지만 운영해요. 일 년 내내 간판은 걸려있지만, 문을 여는 날은 일 년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름이 되면 잊지 않고 오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냉면집이에요. 개점 시기를 잊고 있다가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때가 오면 저도 문득 그 냉면집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웅덩이의 올챙이들에게서도 다가오는 여름이 보입니다. 아주 얕은 물에서도 꼬물꼬물 움직이는 올챙이들을 보고 있으면, 관찰일기 숙제를 하던 때의 기분이 되어 눈을 떼기 어려워요. 어제는 동네 공원에서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겠다며 뜰망과 잠자리채를 들고 무리 지어 다니는 걸 보았습니다. 별로 소득은 없어 보이는데 꺄르르 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어요. 뭐가 저렇게 신날까 하다가 아이들이 변형해 부르는 익숙한 노래에 저도 웃음이 났습니다. 학교 종이 땡대래댕댕 하고 시작해서 마지막은 항상 합창 같은 웃음소리예요.

꽃씨들이 비눗방울처럼 날리고 꽃가루가 비 오듯 떨어지는 공원 한편 긴 의자에 앉아 올해 첫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낮에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일하느라 땀범벅이었거든요. 입하 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벌써 풍성해진 나무가 훌륭한 그늘을 만들어주어서인지 반쯤 마시니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면 땀이 나고 잠깐 시간을 두고 쉬어가면 시원해지는 이 시기를 생산적으로 잘 보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보이는 건 어른들은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개구리를 찾고, 정자에서 산책을 하다 쉬는 듯한 강아지와 그 일행, 바로 눈앞의 나무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며 뭔가를 먹고 있는 박새입니다. 분주하면서도 고요하고, 경쾌하면서도 편안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정말 즐거운 시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요.

공원 길에, 화단에, 골목길에 꽃씨가 잔뜩 떨어져 있습니다. 단풍나무 씨앗은 아직 여행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특유의 눈이 맑아지는 듯한 붉은색 날개가 눈에 띄어 엉뚱한 곳에 떨어진 것도 잘 보입니다. 무언가를 노력하고도 엉뚱한 결과가 나면 보통은 애달픈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꽃씨는 그런 느낌이 덜해요. 시기가 맞지 않아서,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어서 나무로 자랄 수 없을 테고, 그럼 씨앗으로서는 실패한 것일 텐데도 그저 감탄하는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무언가로 자라날 가능성을 품고 여행하는 꽃씨도 아름답지만 땅에 떨어진 꽃씨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헛걸음, 헛수고도 세상에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뻐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든, 어떤 결과를 마주하든 존재 자체로 소중한 꽃씨 같은 여러분 이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인 지금, 기쁨이 차오르는 광경에 풍덩하고 들어가 그 시간을 만끽하시길 바라요.

🦉부엉이: 저는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에어컨 청소를 하고 선글라스를 구비해 놓으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여름맞이에 앞서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치타: 공기청정기를 들여놓았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여지없이 목이 가버리는 몸이 되어서요. 흑흑. 든든합니다.

🦖아르마딜로: 여름 이불을 꺼내요. 사락사락 해서 고양이도 좋아해요!

🐨코알라: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부채를 꺼내고 선풍기를 닦았어요. 뜨거워진 햇빛에 우둘투둘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붉어진 피부를 보니 팔 토시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구구절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입하(立夏)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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