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절기, 소만입니다. 🐆치타: 소서와 대서, 소한과 대한, 소설과 대설. '소'가 들어간 절기가 있으면 '대'가 들어간 절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단, 소만 제외. 소만은 짝꿍 절기 대만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만이 봄인지 여름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소만!
오늘의 절기! 소만(小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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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 어른의 향기는 달콤쌉쌀
- 🐆치타의 사적인 감상 - 차오른다... 무언가가!
-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 소만스러운 하루
-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 호미와 낫 들고 헤집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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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가 있다. 이때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냉이나물은 없어지고 보리이삭은 익어서 누런색을 띠니 여름의 문턱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가 줄을 잇는다. 보리 싹이 성장하고, 산야의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모내기 준비를 서두르고, 빨간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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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어른의 향기는 달콤쌉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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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입니다. 지난 절기 입하는 어린이날과 겹쳤는데, 이번 절기 소만은 성년의 날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침 소만은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차는 절기라고 하니 찰떡같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무럭무럭 생장하고 있나요?
성년이 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여전히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른은 정장을 입고 일을 하거나 능숙하게 운전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른이 된 지금의 저는 아기자기한 원피스를 입고 출근하고 10년째 장롱면허지만 말입니다. 상상과는 멀어졌지만 이런 저도 어린 아르마딜로에게 어른처럼 보일까요? 어른 아르마딜로에겐 아직도 어른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이따금 힘들지만 매일 한 계단씩 나아가는 일이 즐겁기도 합니다. 아르마딜로는 지금도 열심히 생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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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옷장은 향수입니다. 옷장인데 향수라니 싶지만 향기를 입는다고도 표현하니 슬쩍 소개해 봅니다. 향수를 즐겨 사용하진 않지만 이 친구는 제 성년의 날에 받았던 선물로 여전히 의미있는 향수랍니다. 롤리타렘피카의 '씨롤리타'라는 제품으로 달콤하고 시원한 향이 나는 향수입니다. 하지만 가볍지는 않아서 제게 어른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어른입니다
스스로가 어른이 됐다고 느껴질 때가 있나요? 여러분에게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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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만물이 차오르는 절기라니 왠지 잘 먹고 배 불러 흐뭇한 기분입니다. 소만은 초여름의 문턱이라고도 하는데요. 허나 여름 타이틀이 무색하게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섬찟한 속담처럼 이때의 바람은 차고 쌀쌀한 편입니다(제가 사는 동네가 북쪽이라 그럴 수도). 저는 요즘 저녁 늦게 헬스장에서 러닝을 하고 집으로 설렁설렁 걸어오는데 바람이 정말 찹니다. 운동으로 맺힌 땀방울들이 꼭 내 몸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듯 이질적인 온도로 저를 싸늘하게 감싸요. 덕분에 살짝 감기까지 걸리며 소만을 몸소 체험하고 있으니 그것 참 구구절기 멤버답고 뿌듯합니다. 죽지 않은 걸 보니 설늙은이도 아닌 듯하여서 그 또한 감사하고요.
'차오른다'라는 서술어에 가장 어울리는 주어로 무엇이 있을까요? 기쁨이 차오르고, 뿌듯함이 차오르고, 눈물이 차오르고, 숨이 차오르고, 분노가 차오르고. 많습니다. 오늘은 무언가 벅차게 차오르는 콘텐츠들을 소개할게요. 영화 〈거룩한 분노〉, 책 〈마녀체력〉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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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른다... 분노가!
2016년 개봉한 스위스 영화 〈거룩한 분노〉입니다. 아직 스위스에서 여성 투표권이 인정되기 전인 1971년, 투표권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포스터 속 당찬 걸음이 벌써 보통 여자들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데, 사실 너무 보통 여자들입니다. 특히 가운데에서 긴머리와 나팔바지 펄럭이며 나아가는 주인공 '노라'는 영화 초반엔 집안일 하기 좋게 단정히 묶은 머리에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정숙한' 옷차림을 하고 남편과 두 아들, 시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바빴습니다. 1971년이면 68운동이 한바탕 유럽을 휩쓴 뒤임에도, 노라가 사는 스위스 작은 마을은 여전히 기혼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에도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법적 사회적으로 모두 고여있는 곳이에요.
시대적 배경이 어쩔 수 없이 답답함을 주기도 하지만 영화는 대체로는 유쾌하고 씩씩한 분위기입니다. 일단 톤다운된 배경이 예쁘고요, 평범한 마을 여성들의 묵묵한 걸음이 멋집니다. 더디긴 해도 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 걸음이 한 발자국마다 일일이 감동적이에요. "1990년 아펜첼 주를 마지막으로 스위스 전역에 여성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고전 영화처럼 거리를 두고 영화를 즐기다가 마지막 올라오는 자막을 보고 저는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1990년이라니!
미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되 어 이탈리아(총파업), 체코(프라하의 봄), 폴란드(소요사태) 일본(전학공투회의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며 서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68운동'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한국을 빗겨간" 놀라운 운동이죠. 설명으로는 와닿지 않던 '성해방론'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68운동의 아젠다를 외치며 〈거룩한 분노〉 소개를 마칩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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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른다... 운동 욕구가!
책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13년차 에디터로 살며 고혈압과 스트레스, 저질 체력을 마주한 한 여성이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출전, 마라톤 풀코스 달리기 10회를 달성하기까지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 〈마녀체력〉입니다. 마흔 살부터 천천히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저자는 강인한 체력을 쌓은 이후 이후 에디터 생활을 11년을 더 하고, 현재는 인생 제3막을 맞아 강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책 앞부분에서는 분명 나랑 비슷한 체력인데, 아니 훨씬 안 좋은 상태인데 후반부로 가면 범접할 수 없는 운동인이 되어있어요.
달밤에 혼자 운동장을 뛰던 이야기부터 극한의 공포를 이겨내며 바다 수영을 해내는 이야기까지, 수없이 많은 단계의 수없이 많은 도전들을 꺼내어 말하며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아니, "야, 너두 해야 돼!"
사람은 실패를 통해 강해지는 법이라고 하죠. 저는 이 사실이 참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그냥 강해지면 덧나나, 왜 꼭 실패를 겪고 아프게 좌절해야 하는 거냐고? 강해지는 기쁨보다 너덜해진 마음을 수습하는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던 제게 저자는 기깔나는 대안을 제시해 주었어요. 운동을 통해 실패를 경험해 보라고요.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 경험하는 실패는 실제 실패와 스트레스 지수는 비슷하지만 매우 안전하고 특별한 경제적 손실도 없으며 얼마든지 다시 도전해볼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이죠.
저는 러닝을 시작했습니다. 한 2주 되었는데 이정도면 제 인생에서 가장 꾸준히 가장 자발적으로 하는 운동이어서 제 자신이 마음에 듭니다. (뛸 때 멋진 척 필수.) 작은 트레드밀 위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번 해보는 거지요!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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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른다... 존경심이!
'휠체어 탄 여자가 인터뷰한 휠체어 탄 여자들'이라는 부제와 여섯 명의 여성이 휠체어 타는 모습을 부감으로 그린 표지가 강렬합니다. 제목은 더 강렬하고요. 인터뷰집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입니다.
인터뷰이는 10대부터 60대까지 총 여섯 명입니다. 이들 모두는 사실 휠체어 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각 연령대를 대표하는 인터뷰이가 될 정도로 빼어난 부분들이 있습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의적으로 비범해지는 삶'을 살아온, 그러니까 휠체어 탄 '비범한'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배울 점이 더 많습니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지식적 습득뿐 아니라, 비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놀라운 지혜와 용기를 배우게 돼요. 자기계발서 같기도, 철학서 같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이 책의 핵심은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그들의 활보가 사치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도 합의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저만 해도 전장연 지하철 시위가 이슈가 될 때마다 전장연을 비난하는 말들에 자주 반박하며 설명하곤 하니까요.
처음 책표지를 보면 여섯 명의 사람이 다 비슷해 보입니다. 노란색 상의와 하늘색 하의 그리고 휠체어.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동일한 건 딱 그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가지각색이에요. 노란색 상의는 카디건인 것도, 셔츠인 것도, 물방울무늬인 것도 있습니다. 바지 역시 짧은 바지, 긴 바지, 짧은 치마, 긴 치마로 달라요. 머리 스타일은 아예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보는 흔한 시선이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 똑같은 '휠체어 탄 장애인'으로 뭉뚱그려버리는 시선. 더 세심하길 바라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통해 본 것들, 보면서 차오른 존경심이 모두에게 더 당연해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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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차오르는 절기 '소만'입니다. 풍성하고 풍요롭게 차오르는 생동감 있는 자연의 모습에 저의 마음은 부자가 된 것만 같습니다. 풍성한, 풍요로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는 plentiful, abundant, fertile, affluent와 같은 것들이 있네요. 소만 덕분에 덩달아 영어 단어도 찾아보게 됩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소만의 뜻과 잘 어울리는 참 풍요로운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날은 장난꾸러기 조카들과 딱지치기도 하고 팽이도 돌리며 시간을 보냈고 어버이날은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는데요. 이제 스승의날을 맞아 선생님을 찾아 뵙기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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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구구절기 멤버들은 폴리텍대학에서 출판편집디자인을 같이 공부하며 만나게 되었는데요. 각자 다양한 전공으로 졸업한 후 북디자인이나 편집에 관심을 가지고 온 친구들도 있었고 저처럼 회사 생활을 하다가 막연히 책이 좋아서 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출판편집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많은 배움과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열정적으로 이끌어주신 따뜻한 교수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배움을 마치고 나서도 스승의 날이 되면 교수님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날씨도 온화하고 푸르른 날에 교수님을 뵈러 학교에 가는 발길이 더욱 가벼워집니다. 마침 점심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그리웠던 학식을 먹기로 했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점심 한 끼.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꽉 채워 진행되기 때문에 학식은 꼭 챙겨 먹어야 했었죠. 오랜만의 학식 메뉴에는 집밥으로 접할 수 없었던 가자미 구이가 나왔는데요. 가자미가 작지 않고 크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야무지게 먹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던 길을 보며 식당으로 가는 길이 참 예뻤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롭게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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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예쁜 컵에 커피를 내려주시고 서로 다과를 나누며 그간의 소식을 전합니다. 교수님 방을 둘러보다 저희의 졸업 작품을 발견했는데요. 졸업 작품 중 잡지의 앞표지가 벽면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 밤늦게까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준비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우리의 작품이 교수님 방에 걸려있는 것이 매우 뿌듯했답니다.
저희를 매우 반가워하시고 시간을 내어서 이야기 나눠주셔서 교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 작년 졸업 작품도 둘러보고 학교 이곳저곳을 눈에 담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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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찾아뵙고 과거의 한 시점에서 시간을 보냈던 공간인 학교를 둘러보며 마음이 풍요롭고 풍성해지는 꽉 차는 시간을 선물받았습니다. 만물이 차오른다는 소만의 뜻처럼 정말 '소만스러운'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소만스러운 일상도 궁금해집니다.
학교를 나서고 구구절기 치타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일터로 향했다고 하는데요.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을 찾아뵈어 감사를 전하고 또 학생들을 가르치러 떠나는 치타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저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와 스승의날의 참의미를 되새겼답니다. 참으로 소만스러운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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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호미와 낫 들고 헤집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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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사는 곳이 싫어져서는 아니고, 계약 기간이 끝나서 집을 옮겨야 합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불편하게 느껴졌던 요소들은 이제 적응되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고, 떠나려니 아쉬움이 크게 느껴져요.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기 위해 요즘 화제라는 원영식 사고를 시도해 봅니다. 계속 같은 환경이면 무덤덤해지고 무기력해지기 쉬울 텐데 딱 그러기 전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게 되다니 완전 럭키코알라잖앙♡ 하하 이렇게 하면 될까요? 걱정, 근심이 한 번에 사라지진 않았지만 생기 넘치는 밝고 맑은 얼굴이 떠올라서 기분은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앞으로도 이사 준비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을 예정이라 미리 슬슬 준비 중이에요. 그래서인지 요즘의 화두는 '정리'입니다. 이사 비용 줄이기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늘어난 짐을 정리해야겠다는 것이 마음의 한구석에 숙제로 줄곧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정리를 잘 해내고 싶어 정리 전문가들의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곤도 마리에의 콘텐츠도 보았어요. 설레는 것을 남긴다는 방법론은 정말 공감이 되고 와닿았는데, 막상 그걸 가려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모든 걸 안고서도 편안한 마음이라면야 아무 문제 없겠지만, 한껏 쌓여있으니 행복했던 과거의 결과물임에도 짓눌리는 것 같습니다.
소만은 모내기와 김매기를 하는 시기입니다.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회복과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솎아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가 소만과 맞아떨어지니 절기와 삶의 만남이 절묘하단 생각이 들어요. 겪고 있는 어려움과는 별개로 신이 납니다. 어제가 오늘을 만들고 오늘이 내일의 밑거름이 될 테니 과거의 기록들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지고이고 살다 보면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지금은 여력이 없어서 뭔가를 채울 엄두도 안 나지만, 비우고 나면 또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벌써 한짐 내다 놓았는데 아직도 확인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한가득이에요. 기록물이 가장 많습니다. 먼저 버릴지 보관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살피고, 그 후엔 종이에서 링제본의 코일을 분리해 내거나 스테이플러 심을 제거하는 일의 끝없는 반복이에요. 그다음은 책과 옷입니다. 읽지 않는 책들, 입지 못하는 옷들이 확실히 있어서 욕심만 내려놓으면 결정이 한결 편해요.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가장 결정이 어려운 건 낡은 옷, 어렸을 적의 기록입니다. 낡은 옷은 일단 고쳐 입고 싶기도 하고, 그런 욕심을 버리더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니 기부나 판매도 어려워요. 어렸을 적의 기록은 사진을 찍어두고 버릴까 싶기도 한데, 왠지 이 물성을 다시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버리는 게 꺼려집니다. 그리고 취미 물품들도 있어요. 당장 꼭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 뒷전으로 밀려있지만, 언제가 다시 하고 싶어질 텐데 하는 생각에 결정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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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정리도 꽤 체력이 드는 일인가 봐요. 결정하느라 너무 고민을 해서 더 고되게 느껴지는 걸까요? 좁은 방 광활하게 펼쳐진 물건밭에서 훗날 맺힐 열매를 상상하며 느릿느릿 김매기를 하는 중입니다. 어떤 것을 키워가고 어떤 것을 베어내게 될까요? 여러분 안의 반짝이는 새싹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잡초를 베어내고, 소중하게 키워낸 마음을 논에 심기도 하는 소만 보내시길 바랍니다. 힘을 빼앗는 잡초는 잘 골라 베어내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주는 야생화는 조금 남겨서 즐기는 시간도 가지시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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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구구절기 이야기: 입하(立夏)
⚡️쥬피썬더: 문학, 소설 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주로 봄, 겨울, 가을인 거 같아요. 여름 하면 그보다는 노래나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르는 거 같습니다. 치타가 소개한 〈테스와 보낸 여름〉을 보았는데 정말 많이 힐링되었어요. 살면서 우리는 많은 걱정과 문제를 안고 살지만, 중요한 건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울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다면 여름이라는 계절은 긍정적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제공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 정말 화창하니 기분이 좋아요!
🐆치타: 이브이 진화! 쥬피썬더! 〈테스와 보낸 여름〉을 보셨군요! 즐거운 힐링의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현실을 마주할 마음가짐을 제공'하는 계절이라니, 쥬피썬더님이 여름을 해석하는 방식이 참 멋집니다. 여름 하면 노래나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른다는 말에도 공감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요즘 즐겨 듣는 여름 노래 하나 추천할게요. Sarah Kang의 'Summer is for falling in love'인데, 여름의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이 드는 노래예요.
💢연탄재발로차지마라혼난다: 저는 날씨가 좋으면 평소에 안 쓰던 말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예를 들면 신록이라든가, 청명이라든가 하는 말이요.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5, 6월이면 "청명하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절기상 청명이 아니라 입하였네요. 오늘부터 제 최애의 절기는 입하입니다! 입하는 봄의 마지막이면서 여름의 시작, 햇빛에 있으면 따뜻하고 그늘에 있으면 서늘한, 참 매력적인 절기 같아요.
🦉부엉이: 절기 '입하'의 매력에 빠지셨네요! 입하 때 아르마딜로가 이야기한 발음 '이파이파'를 혼잣말로 해보며 발음까지 매력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구구절기를 하며 절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절기는 참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신비하다며 개인적으로 감탄하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구구절기와 함께 매력적인 절기에 대해서 함께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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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 아르마딜로의 질문을 가져오겠습니다. 스스로가 어른이 됐다고 느껴질 때가 있나요? 여러분에게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운전할 때 제가 좀 어른 같다고 느껴요. 이렇게 느끼는 점이 특히 안 어른 같긴 하지만요. 하하하.
🦉부엉이: 이미 어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된 지 꽤 된 것 같아서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어른이 되어서 불안해진 적은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일에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많아지면서부터요.
🐨코알라: 지금 제게 어른은 잘 버리는 사람! 버리는 거 너무 어려워요. 항상 내게 버겁고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어른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어른이 됐다고 느껴질 때는 거의 없어요.
🦖아르마딜로: 저는 처음 독립하면서 집을 계약했을 때 어른이 됐다고 느꼈어요! 다시 하라 그러면 또 엄청 헤맬 것 같지만 그렇게 하나씩 어른이 되는 거겠죠?
오늘 구구절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만(小滿)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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