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 🍁 상강마마 납시오~

열여덟 번째 절기, 상강입니다.

2024. 10. 20.

상강(霜降) 🍁 상강마마 납시오~

🦖아르마딜로: 어쩐지 찬바람이 휭 분다 싶더니 서리가 내리는 절기 상강입니다. 무더위를 보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도 막바지라니 가을은 어쩜 이리 짧은지!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상강이 성큼 다가옵니다.

오늘의 절기! 상강(霜降)

1.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 알록달록 산책길
2.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 문학이 이끌어준 책의 도시, 파주출판도시
3. 🐆치타의 사적인 감상 - 어떤 어른을 소개합니다
4.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 서리처럼 변해 봐요

상강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뜻하는 절기이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따라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가을 나들이를 하는 이유도 이런 계절적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기에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한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아르마딜로의 오늘 뭐 입지

알록달록 산책길

안녕하세요.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입니다. 벌써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이 되었습니다. 낮 동안은 가을의 청명한 날씨지만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아직 은행잎도 덜 익었는데 가을 절기가 끝이라니!' 했는데 상강에 이를 즈음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고 하네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나날입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틈틈히 산책을 나가고 있습니다. 저의 산책 친구는 〈피크민 블룸〉이라는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입니다. 핸드폰 만보기에 연동되어 걷는 대로 꽃을 심거나 곳곳에서 모종을 모아서 피크민이라는 캐릭터를 수집하는 게임이에요. 특색 있는 건물이나 이상한 모양의 동상 등에서 버섯을 사냥하거나 피크민 먹이를 모을 수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포켓몬 GO〉와 비슷한 게임이랍니다. 곧잘 나가기 귀찮아지는데 산책에 동기를 불어넣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동네 이곳저곳을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들어요. 피크민의 친밀도를 쌓아서 장식을 모을 수 있는데 이게 또 굉장히 귀엽습니다. 꽃을 심으며 걸어간 길은 꽃의 색깔을 따라 액정 속 지도에 알록달록하게 남아서 산책길이 예쁘게 물들어요.

〈피크민 블룸〉의 피크민은 빨강, 노랑, 파랑을 포함해 총 일곱 종류가 있습니다. 오늘은 피크민 색깔을 닮은 세 가지 색의 튤립이 그려진 치마를 입었어요. 어쩐지 치맛자락이 팔락거릴 때마다 피크민들의 기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즐거워져요. 피크민과 튤립 치마와 함께 하는 산책길은 평소보다 선명하고 다채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얼른 단풍도 울긋불긋 물들었으면 좋겠어요.

구독자 님도 산책을 즐기나요? 구독자 님의 산책 친구는 누가 있나요?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문학이 이끌어준 책의 도시, 파주출판도시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에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한강 작가의 소식을 구독자 님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문자가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며 도서관은 대흥분 상태라고 전해왔어요. 이 기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매우 놀라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감동의 여운이 마음속에 가득 차오릅니다. 한강 작가의 문학 작품은 2016년 영국의 문학상 '맨부커상'으로 '채식주의자'가 선정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저도 이때 한강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출판업계가 활기를 띠는 모습인데요. 영광스러운 노벨문학상의 기쁜 소식과 함께 책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 출판인들의 도시 파주출판단지를 찾았습니다.

파주출판도시

'출판의 경제적 활동거점', '출판을 매개로 한 문화중심기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일대 약 48만 1천 평 면적에 약 1조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조성한 사업이다.

단지 구성은 출판사·인쇄소·제본소 등이 있는 생산지구, 서점·도서관·유통창고·은행 등이 있는 유통센터, 전시장·박물관·출판연구소 등이 있는 문화센터, 그밖에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출판물종합유통센터 등이 있다. 단지 내 건축물은 건축가 승효상 등이 설계했으며, 환경친화적인 생태도시를 지향한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수많은 출판 관련 업체들이 상주하고 있는 파주출판도시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출판사 '문학동네'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판사와 인쇄소 그리고 지류 업체들이 상주해 있어 책 제작에서 유통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출판에 관련한 업체들이 집약되어 있어 효율적인 업무 체계가 가능합니다. 더불어 습지 생태를 유지하면서 친환경적인 건축을 시행하여 단지 내에 고층 건물이 없어 시야가 확 트여있고 하늘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전에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저에게는 익숙한 곳이기도 한데요. 자연친화적인 습지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어 철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트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근무할 때 무리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끼룩끼룩 하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답니다.

파주출판도시에 처음 방문하신다면 꼭 거쳐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지혜의 숲'이라는 곳인데요. 드라마나 각종 영상 매체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장소일거라 생각됩니다.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인 김고은이 이곳을 배경으로 출연했었고 2019년에 방영된 이나영과 이종석 주연의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주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출판단지가 익숙한 저는 드라마 속의 장소를 보면서 '아 저기는 그 골목이잖아' 하며 출판단지 안의 어느 길목인지 퀴즈처럼 맞춰가며 장소를 회상하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지혜의 숲은 벽 전체를 둘러싼 책들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 오직 책만을 위한 공간에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곳입니다. 책 한 권과 차 한 잔만 있다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릴 것 같네요.

조금 더 여유 있게 지혜의 숲에 머무르거나 출판도시를 둘러볼 의향이 있다면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에 숙박을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출판도시에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명필름아트센터가 있습니다. 명필름아트센터는 28년간 50편의 영화를 제작한 명필름의 영화정신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합니다. 영화관뿐만 아니라 카페&펍, 쇼룸, 공연장, 아카이브 룸, 스크리닝 룸, 굿즈샵이 5개 층에 걸쳐 있어 다양한 문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렇게 감각적인 공간에서 최상의 사운드로 누리는 영화 감상은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매년 열리는 파주페어_북앤컬쳐 '파주 북소리'는 북마켓, 거리공연, 버스킹, 플리마켓, 푸드트럭 등 다채로운 행사들과 함께 문학과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 2024년 페어는 9월에 이미 막을 내렸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내년 2025년을 기약해 보시길 바랍니다.

출판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동산인 심학산 쪽으로는 맛집들이 즐비하고 대형 아울렛도 지척에 있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출판사 직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이 있는데 유치원마저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이라 소개해 봅니다. 갤러리 아니고 유치원이에요.

이렇게 자연과 호흡하는 친환경적인 문화공간이자 아름다운 건축미가 넘치는 곳 파주출판도시에서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소설가 한강 작가가 이끌어 준 책의 도시 파주출판단지로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을 떠나보았는데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물이 바다로 이어지는 것처럼 한강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전 세계로 흘러가기를 바라봅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에 깊은 독서로의 여정이 구독자 님과 함께 하기를.

출판도시문화재단 Paju book city

위치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이용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지혜의 숲)

문의 및 안내 031-955-0050

홈페이지 http://pajubookcity.org/Main/Main

치타의 사적인 감상

어떤 어른을 소개합니다

눈부시게 무르익은 황금빛 벼는 수확이 한창이고, 철새들은 대장 새의 삐끼룩 삐끼룩 외침을 따라 무리 지어 하늘을 유영하고, 우리 집 겨울 개들은 가붓한 봄가을 털들을 밀어내고 빽빽한 겨울털을 내며 월동 준비에 한창입니다. 정말이지 온 집안에 개털이 난리네요. 하루에 청소기를 다섯 번씩 돌리고 이곳저곳의 개털을 주워대다 보면 이걸 그냥 버릴 게 아니라 오래되어 홀쭉해진 패딩에 좀 욱여넣어야 하나, 솜이불을 하나 지어 팔아보면 어떻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곧 겨울이 올 것임이 확실히 체감되는 지금,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서리 상(霜), 내릴 강(降) 자를 써, 서리 내리는 때라는 뜻의 이 절기. 혹시 우리 집 온 사방에 개털이 하얗게 내릴 것을 미리 알고 지은 조상들의 혜안이 담긴 이름이었을까요.

개털 이야기를 더 많이 했지만 도입부의 핵심은 사실 '무르익은'이었답니다. 오늘 준비한 책은 무르익은 어른들의 이야기예요. 평균 나이 72세 열여섯 명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그리고 76세 할머니의 매콤한 에세이 〈즐거운 어른〉입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면

몇 년 전 표지 디자인이 좋아 읽게 된 인터뷰집입니다. 책과 안경, 호랑가시나무 열매, 탁상시계가 대각선으로 띄엄띄엄 놓여있고, 배경은 진하고 선명한 초록색이어서 봄 여름 가을의 세월을 지나고 조용한 겨울을 맞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같은 시리즈인 〈자존가들〉과 함께 두면 그 인상이 더 강해졌고요.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아 보이는,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 표지를 지금도 좋아합니다.

책 속 인터뷰이로는 배우 윤여정과 이순재,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미술사학자 유홍준, 철학자 김형석 등 익숙한 어른들도 있고 디자이너 노라노, 요리 블로거 정성기, 일본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등 (제 기준) 낯선 어른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나는 한 어른이 있는데 바로 하형록 기업가예요.

서른두 살, 명문대 출신에 전도유망한 건축가였으며 아내와 어린 두 딸이 함께하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지는 심실빈맥증 진단으로 꽃길을 걷던 그는 날벼락처럼 가시밭길로 내동댕이쳐지죠. 오매불망 심장 이식을 기다리던 2년 후 다행히 꼭 맞는 심장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그의 행운을 축하하며 건넨 말, 옆방의 여자가 기다리는 심장도 그가 기다리는 심장과 똑같다는 말에 그는 믿을 수 없는 결정을 합니다. 그의 차례에 온 그에게 꼭 맞는 심장을, 이식받지 못하면 일주일에서 길어야 3주밖에 더 못 사는 그가 옆방의 여자에게 심장을 양보하겠다 결정한 거예요. 의사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는 완강했고 결국 심장은 옆방의 여자에게 갑니다.

이 이야기를 읽자마자 숨이 막히고 눈물이 차올랐는데, 감동이나 감탄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믿을 수 없이 큰 벽 앞에 선 것처럼 압도되는 감정이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악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선해질 수 있을까의 답은 가늠조차 되지가 않아서요. 어떤 기도를, 어떤 생각을, 어떤 선택들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내며 살면 이런 결정을, 단 몇 초 만에 심장을 주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이 같은 희생의 선택을 해온 그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이 어른은 뽐내거나 과장하는 것 하나 없이 담담하고 다정하기만 해서, 저는 안 그래도 죽어서 천국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 천국은 둘째고 이승에서 어른 되기도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위대한 위인들의 거대한 이야기들만 가득해 어린 독자 기를 죽이는 건 절대 아니고요. 부잣집에서 혹은 가난 속에서, 여자로 혹은 남자로, 어릴 때부터 혹은 나이를 제법 먹은 뒤에 각자의 다양한 배경과 사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낸, 배경과 사연의 다양성으로는 우리와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진심이면서도 한편으로 아주 단순한 어른들의 삶의 걸음걸음이 묵묵한 위로와 든든한 힘이 됩니다.

인터뷰어이자 저자인 김지수의 인터뷰 이끄는 솜씨와, 글로 옮기는 필력 또한 굉장한 저력이 있어서 아름다운 문학 작품처럼 읽히기도 하니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이에게도 문학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어른〉

즐거운 어른을 만나고 싶다면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과는 또 아주 다른 모양의 표지입니다. 할머니 셋이 목욕탕에서 나란히 의자에 쪼그려 앉아있고, 때수건 모양과 질감의 익숙한 초록, 일명 '때수건 그린'의 띠지가 둘러져있어요. 띠지를 살짝 들추면 시선 따위 신경 안 쓴다는 듯 무심하여 더욱 당당한 할머니들의 엉덩이가 보이고요. 즐거운 표지입니다. 저는 띠지를 소중히 하지 않는 편이라 납작하게 눌러 책갈피로 쓰거나 자연스럽게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이 띠지는 〈즐거운 어른〉의 킥이어서 잘 보관해둘 생각이에요.

76세 이옥선 할머니가 첫 책 〈빅토리 노트〉를 낸 뒤 다시는 책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가 어떻게 집요한 편집자와 딸과 딸 친구의 작전에 걸려들어서 마지 못해 내겠다고 한 책,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간 쌓인 삶의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와 마감 한 번 어기지 않고 착착 원고를 써내 완성되었다는 책 〈즐거운 어른〉이랍니다.

'최선을 다해라' 대신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유명해져라' 말고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를 쿨하게 내뱉는 할머니의 말은, 자신의 현재를 '골든 에이지'라 칭하며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으로 설득력을 얻습니다. 뭐랄까,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속 열여섯 명의 이야기가 각기 다르면서도 한 가지 메시지를 향해 가는 느낌이라면, 〈즐거운 어른〉 속 이옥선 할머니 한 명의 목소리는 어쩐지 제각각인 이야기들을 되는 대로 풀어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른 중반의 나에게도 힘이 되는 건 그녀가 즐거운 어른이 되기까지 걸어온 일상 속 한걸음 한걸음의 무게가 문장들 안에 고스란히 쌓여 있어서이겠지요. 노년에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봉사활동 하면 좋다는 주변의 권유에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그만하면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 했다'며 단호히 거절하고, 출생률이 매년 최저점을 경신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외쳐대는 분위기 속에서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라며 초연하게 설명하는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웃기기만 하지는 않아요.

그중에서도 지나가듯 가볍고 담담히 남긴 즉흥 유언은 자꾸만 떠오릅니다. 오직 자신이 지나온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을 모두 겸허히 받아들여 지금이 참 즐겁노라고 말하는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았어요. 자신을 할머니라 지칭하지만 저에겐 꼭 언니처럼 다가왔던 그녀의 쿨하고 따스한 유언의 일부를 구독자 님에게도 전할게요.

코알라의 뭉툭한 연필

서리처럼 변해 봐요

지난 보름 동안 일터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했으면서도 아쉬움이 남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그런 마음이 사그라질 정도로 지치는 기간이었어요. 근무지 배정 결정은 정해진 시일을 지나 계속 미뤄지고, 어디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고 돌았습니다. 처음엔 누군가 기존의 근무처 배정에 불만을 가지고 강하게 변경을 요구하는 한 명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불만을 가져도 충분할 만큼 혼자 힘든 일을 계속 맡고 있던 동료 A는 굉장히 부드러운 성격이어서, 절대 그런 불평불만을 드러내거나 요구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나머지 동료들이 이 배정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굳이 소문이 난다면 적어도 세 명 이상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내용이었어야 얼추 사실에 가까운 일이 되는 거였어요. A는 사람들이 본인이 이야기한 것으로 오해할까 힘들어했습니다. 평소 그와 함께 일해 본 사람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요.

다음으로는 동료 B가 본인 일이 힘들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B는 부정적인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일이 힘들지, 본인 일은 할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그 소문 역시 엉터리일 게 분명했어요. 일하다 마주친 B는 그 소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머지 동료들과 멀어져있지 않냐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황당해했어요. 누군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오싹하기도 했습니다.

소문은 그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동료 C가 특정 근무처를 힘들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는데, C는 사적인 자리에서 줄곧 그 근무처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말해왔거든요. 해당 근무처의 담당자가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마음 상해하길래, 저희끼리 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절대 사실이 아닐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오해는 쉽게 풀렸지만, 그런 헛소문이 일터에 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개운하지는 않았어요.

소문과 관련된 모두가 지쳐가다가 바로 며칠 전 근무처 재배정이 끝나고 소문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소문의 진원지로 의심하는 사람은 근무처 배정 담당자예요. 그분이 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말을 전하는 일이 배정 결정으로 완료되자 새로운 소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소문이 돌더라도 담백한 사실이라거나 기분 좋은 내용이면 좋았을 텐데, 일정은 미뤄지지, 설상가상 부정적인 헛소문만 돌아서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이 그 이전의 일 년 반의 시간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리는 대체로 부정적인 표현에 끼어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설상가상도 그렇고요, 서릿발을 맞았다고 하면 피해를 입는 걸 뜻하니까요. 아무래도 반갑지는 않은 현상인가 봅니다. 기온이 많이 떨어질 때야 만날 수 있고, 농작물에 피해를 끼쳐서 그런 걸까요? 그래도 이번엔 서리가 내릴 즈음 원래 있던 문제가 해결되고 나쁜 기운도 사그라들어서 제게는 안도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그런데 서리는 사실 내리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상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말입니다. 서리는 기체가 고체로 변화하는 승화 현상이래요. 서리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외부의 조건에 의해 변화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이번 헛소문 사태도 다시 보입니다. 헛소문이 소문이 되지 않게 하는 더 현명한 태도가 우리에게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굳이 당사자에게 전해서 억울하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바로 정정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헛소문 사태에 분개하면서 소문에 보탬이 된 스스로를 반성했어요. 소문의 진원지를 짐작해 보는 행위도 같은 맥락에서 좀 못난 모습 같습니다. 좀 더 가치 있는 일로 승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서리와 만나게 되는 이 시기, 구독자 님의 마음속에도 조금 못난 욕구가 있다면 멋진 활동으로 승화할 수 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지난 구구절기 이야기: 한로(寒露)

🦔고슴도치: 10월의 가을 절기 '한로'가 너무 반가워요! 그동안 여름 같은 가을, 무더운 가을을 보내느라 조금(많이) 슬펐는데 이제야 가을 같은 가을이 와서 기뻐요! 한참을 덥다가 갑자기 날씨가 쌀쌀하게 변했음을 느끼고, 사람들의 인사말이 '감기 조심해요! 옷 따뜻하게 입어요!'로 통일된 것도 귀여워요.
최근에는 서울숲으로 피크닉을 다녀왔어요. 그날은 요가와 관련된 큰 행사가 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다같이 요가하는 모습도 우연히 보고, 여러 부스도 구경하고, 사슴 공원도 보고 왔어요. 사실은 감기 몸살에 걸려서 몸 컨디션이 온전치 않아 100% 즐기고 오지 못한 느낌이라, 더 추워지기 전에 꼭 다시 가고 싶어요!
그럼 구구절기 여러분도 이미 여러 번 들은 인사겠지만, 감기 조심하시고!!! 옷도 꼭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아르마딜로: 오래도록 더워서 기후위기를 실감하던 한 해였는데 이젠 제법 쌀쌀해졌죠. 저도 여름은 더워야, 겨울은 추워야 마인드라서 제 계절을 따라가는 게 참 좋더라구요! 점점 떨리는 날씨지만 안부를 걱정하고 챙기는 인사말이 더욱 포근하게 다가오네요. 고슴도치 님도 옷 따숩게 입고 감기를 힘차게 무찔러서 더 추워지기 전에 100% 즐기고 오길 바랍니다!

🦒기린: 저는 처음 문신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가 성경을 읽으면서 였어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면 성경 중에 문설주에도 기둥에도 식탁에도 눈에 보이는 곳마다 말씀을 붙여놓으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자기한테 가장 소중하면서도 그 의미를 잊기 쉬운, 말하자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말자는 뜻으로 문신을 해야하나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새로운 가족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문신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전성기를 회상한다는 것은 지금은 그때보다 못하다는 이야기 아닐까 합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쳐야 할 것도 많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도 많기 때문에,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나의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 전성기는 내일로 하겠습니다! (좀 오글거리는것 같지만?!)

🐆치타: 가족의 의미를 담은 문신이라니 멋지네요.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자녀들이 태어난 지역의 위도와 경도를 팔에 새겨넣은 걸 봤을 때의 어떤 충격과 감동이 떠오릅니다. 실제 몸에 문신을 새기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를 모든 순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하하
전성기는 내일! 오글거리지 않고 멋지기만 합니다! 기린 님의 곧 다가올 전성기를 응원할게요.

🦖아르마딜로: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씩 마시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나만의 아침 루틴이 있나요?

🐆치타: 저는 강아지들 물이랑 밥을 챙겨주고, 냠냠 챱챱 소리를 들으며 거실과 부엌 창문을 열어요. 그럼 이제 밤새 묵은 공기를 휘젓는 바람 소리를 벗 삼아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십니다.

🐨코알라: 베란다 문을 열고 식물 식구들이 잘 있나 슬쩍 본 다음, 아주아주 연해서 거의 물에 가까운 미지근한 커피를 마셔요.

🦉부엉이: 저도 창문을 열고 공기를 순환시켜요.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십니다.

오늘 구구절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상강(霜降)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내 이야기 나누기

지난 구구절기 보기

구구절기를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제철 맞은 네 짐승의 구구절절 24절기 소식

이전 뉴스레터

한로(寒露) 👒 가을입니다. 근데 이제 완벽한 날씨를 곁들인…

2024. 10. 6.

다음 뉴스레터

입동(立冬) 🍂 겨울의 처음 절기, 월동 준비를 시작할 때

2024. 11. 3.

구구절기

제철 맞은 네 짐승의 구구절절 24절기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