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과 시간만 있으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

"시간과 이불". 귀리의 오늘의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2023. 11. 19.

🦖아르마딜로: 찬바람과 함께 귀리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호까지만 해도 가을이었는데, 벌써 겨울이 성큼 찾아왔어요. 두꺼운 솜이불과 겨울 외투를 꺼내느라 분주한 나날입니다. 당연히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다같이 고민하고 있기도 하고요! 귀리 구독자분들의 일상속 한 순간이나마 소소한 즐거움을 드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시간과 이불". 귀리의 오늘의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아르마딜로🦖의 취미로 만든 세상 - 이불 속 시간아 멈춰라
코알라🐨의 뭉툭한 생각 - 이불을 덮어주고 싶어
치타🐆의 사적인 감상 - 치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부엉이🦉의 작고 소중한 장면 - Here and Now!

🦖

아르마딜로의 취미로 만든 세상

이불 속 시간아 멈춰라

안녕하세요. 귀리의 취미인간 아르마딜로입니다.

여러분은 이불 속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랍니다. 특히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오 분만, 십 분만하고 간절히 바라곤 합니다. 그런 간절한 아침마다 시간을 멈춰둘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둘리'의 타임코스모스처럼 바이올린일지도 모르고 '닥터후'에서처럼 공중전화부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타임머신은 이불 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불을 덮고 누우면 분명 눈 한 번 감았다 뜬 찰나의 시간인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매일 이불 속에서 전력으로 미래를 향해 달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불 밖이 아니라 '이불 속은 위험해'가 맞는 말인 게 아닐까요?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로 떠나고 싶으신가요? 과거로 가서 후회하는 일을 막고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미래로 가서 궁금한 결과를 보고싶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침에 눈을 뜬 저처럼 시간을 멈춰두고 싶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선택이든 행복을 바라기에 시간 여행을 선택하는 거겠죠?

오늘은 시간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 <어바웃 타임>의 OST와 시간아 멈춰라! 뜨개 손목시계를 소개하면서 마치겠습니다.

<About Time> Theme

코바늘 손목시계

🐨

코알라의 뭉툭한 생각

이불을 덮어주고 싶어

날이 찹니다. 까슬하고 얇은 여름 이불 빨래를 했어요. 이제는 도톰하고 보드라운 겨울 이불의 계절입니다. 막 꺼내서 보송보송한 이불 속에 들어가니 상상 속 동굴처럼 아늑해요. 이불 밖 지척에 누군가 함께 있어도 이불 속에서는 나만의 시간이 흐릅니다.

이불 속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 봐요. 어렸을 적 친구네 집에 자러 가거나, 친구가 우리 집에 자러 오면 한 이불을 덮고 그 안에서 키득거리다 잠들곤 했습니다. 그때에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불 속 세상은 이불 밖 세상보다 서로의 상상이 더 쉽게 이해되었던 몰입의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딴 생각을 하거나 혼자만의 놀이를 하기 어려운,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곳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깨어있을 때는 마냥 재미있었지만, 함께 덮는 이불이 항상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가 잠결에 이불을 당기면 몸의 반쯤은 이불 안에, 나머지는 이불 밖에 있는 채로 잠에서 깨고는 했지요. 이불이라는 게 내가 걷어차면 몸 어느 부위에 얼마나 걸쳐 있든 상관없지만, 남이 빼앗아가면 그 벗겨질 듯 말 듯 한 느낌이 참 불안하고 불편하더라고요. 반이 덮여 있어도 이불이 주는 포근함은 반의 반도 안 남은 것 같아요. 누워 있는 내 몸의 가장 높은 부분과 이불이 맞닿아 있어도, 바닥으로 흐르듯 내 몸을 감싸고 있지 않으면 '이불을 덮었다'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내 몸이 이불 바깥으로 나와있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함께하는 이가 우리의 시간을 마음대로 당겨쓸 때, 이불을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스스로 흘려보냈던 시간은 걷어찬 이불처럼 아쉬움이 없는데, 휘둘린 시간에는 이불을 빼앗겼을 때처럼 서늘함이 느껴져요. 잠결에 이불을 빼앗긴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엉겁결에 불쾌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시간을 빼앗겼다고, 존중받지 못했다고요.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앉았습니다. 깨고 보니 친구는 잠을 깨우려고 이불을 당긴 게 아니었어요. 그저 잠결에 뒤척이다 일어난 일입니다. 함께 덮기에는 부족한 남은 이불로 친구의 등을 감싸고 다른 이불을 하나 꺼내왔어요. 포근하게 온전히 내 몸을 감싸는 이불을 느끼며 다시금 잠을 청했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제 것인 양 당겨쓴 이도 어딘가 불편해 뒤척이다 그런 걸지도 몰라요. 그럼 잠시 잠에서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시간을 내어주고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겠지요.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의 이불을 덮고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겁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이불을 덮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함께, 그리고 각자 포근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

내 이야기 나누러 가기

🐆

치타의 사적인 감상

치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불 속은 신기한 세계입니다. 그냥 이불 한 장인데, 그 안에 쏙 들어간 순간 시간이 딱 멈춰요.

이제 크로노스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여기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펼쳐지는 곳. 여섯 살 치타 어린이의 이불 속이에요.

저 먼 우주로도, 가본 적 없는 어느 섬으로도, 아마 존재하지 않을 어느 이상한 미로 속으로도 마음껏 떠나봅니다. 방에 가만히 놓였던 인형들이 움직이며 말을 걸면, 이제 나는 물 속에 들어가도 숨을 쉴 수 있고, 숨을 후욱 들이마시며 몸을 부풀려 별까지 손을 뻗을 수도 있어요.

저는 워낙 겁이 많은 어린이여서 언제나 온몸을 꽁꽁 싸매듯 이불을 덮었습니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똑똑유령이나 찬바람괴물 같은 게 들어올까 봐서 귀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목 뒤로 욱여넣고, 이불 아래쪽도 발 밑으로 반드시 접어 넣었어요.

겁만큼 생각도 참 많아서 까무룩 잠드는 그 시점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오만 생각들을 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자기 전에는 그날의 일들을 곱씹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릴 때는 어쩜 그렇게 생각을 그날이 아닌 이쪽저쪽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린 저는 '만약에 내가 작아진다면', '만약에 내가 2층까지 점프할 수 있다면', '만약에 갑자기 내 말이 내 생각이랑 다른 소리로 나온다면' 등 백만 만약에 어쩌고부터 시작해서 '눈을 감아도 떠도 똑같이 까맣게 보이면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어떻게 알지?', '무릎 간지러운데 긁고 나서 이불을 다시 목이랑 발 밑으로 추스르면 지금 이 마음에 드는 상태만큼 추슬러질까?' 같은 제법 과학적이거나(?) 꽤나 시답잖은 생각들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꼭 했던 한 가지 상상이 더 있는데, 바로 방금 전 옆에 누워 엄마가 읽어준 책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이었죠.

자기 전에는 엄마가 항상 책을 읽어주셨어요. 더 어릴 때는 엄마가 다 읽어주셨고, 언젠가부터는 한 쪽씩 번갈아 가며 읽었어요. 다음 이야기를 향한 호기심만큼 나의 읽기 속도가 따라주지 않아서 "그냥 엄마가 다 읽어주면 안돼?" 요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엄마는 매번 "치타가 할 수 있어. 엄청 잘 읽고 있는데?" 하며 근사한 거절을 해주었어요.

주인공의 몸집이 작아지는 이야기는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몇 번이나 꿈에서 조그만 치타가 되어보았고, 인어공주의 결말이 왕자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인생 첫 비극) 큰 충격을 받고 마지막 쪽을 다시 그려 결말을 바꾸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어린이 치타는 무럭무럭 자라 파란색 꽃무늬 카펫과 분홍색 블라인드로 방을 꾸미고,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연보라 패딩을 입고 커다란 강아지와 산책하며 수다를 떠는 즐거운 어른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역시 깨달아서, 지금도 여섯 살 그때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동화같은 세상이어서 마음껏 상상하며 살 수 있고, 동화와는 다른 세상이어서 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믿어요.

자, 이제 이불 속으로 들어오세요.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잠시 저쪽에 치워둡시다. 여러분을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줄 단편 애니메이션을 소개할게요. 오늘의 사적인 감상은 바로 이 영화 <La Luna>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부엉이의 작고 소중한 장면

here and now!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12월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모두 한 해의 끝자락에 어떤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이 아쉬운 이 순간, 한 해의 끝을
차분하게 독서와 명상을 하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릴게요.

제가 소개드릴 책은 저자 '마이클 브라운'의 온전한 현존체험으로 이끄는 10주간의 내면여행 '현존수업'입니다.

# 당신은 부단히 현재를 건너뛰며 살아간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당신은 자신이 실제로 살고 있는 유일한 순간인 바로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대신 과거와 미래라는 환영 속으로 주의를 투사함으로써 정작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진정한 육체적, 감정적 경험은 놓치고 만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어느 때부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외면해야만 했던 내면의 아이가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는 신경 질환에 걸린 후 9년간의 모험적인 순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증상을 받아들이고 통합시킬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내적 경험을 토대로 10주간에 걸친 연습을 통해 '현존(presence)'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저도 책을 읽으며 10주간의 내면 통합 과정을 실천해 보았는데요. 매일 15분간의 호흡 연습을 2회씩 해야하는데 그 15분이 매우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순간을 마주했고 한주에 주어진 통찰 문장을 호흡과 함께 되뇌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당연히 훈련을 빠트린 날도 있어서 10주를 넘기고 말았지만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과정을 다 마친 지금 제 모습에서 뚜렷하게 눈에 띌 만한 결과를 찾을 수 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확실히 호흡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현존'의 울림을 자각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어서 저에게는 잘 맞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책을 읽으며 10주간의 내면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한 번에 변화되기는 어려우니까요.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현존수업 같이 해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마지막을 차분하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현존수업 들으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