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절기, 한로야. 🦖 아르마딜로: 안녕,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야! 이번 한로는 추석연휴와 겹쳐서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그래선지 가을의 그리운 마음도 커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일까? 가족과 친구, 또는 홀로 보름달을 보면서 무르익는 가을을 즐기기로 해!
오늘의 절기! 한로(寒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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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 술이 익는 깊어가는 가을
- 🦖 아르마딜로의 절기 한 갈피 - 세이에게
- 🐆 치타의 사적인 감상문 - 나의 눈부신 친구, 소영
- 🐷 돼지의 같이 듣는 노래 - 그럼에도 불구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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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가운데 17번째 절기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공기가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을 가리킨다.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때이다.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같은 여름새와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로는 중양절과 비슷한 시기에 드는 때가 많아 중양절 풍속과 함께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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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술이 익는 깊어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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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이슬이 맺히는 절기 ‘한로’에 부엉이가 가져온 소식은 주류&와인 박람회에 다녀온 이야기야. 지난 9월 25~27일까지 3일간 마곡 코엑스에서 주류 박람회가 열렸는데 전시회에 대한 관람기가 아니라 어느 위스키 시음 행사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온 썰이야. 하하. 술 한잔 마시는 가벼운 기분으로 즐겨줘.
내가 시음을 권한 술은 아일랜드에서 생산하는 ‘내터잭 아이리시 위스키Natterjack Irish Whiskey’였어.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술에 대한 정보는 문외한이고 더군다나 위스키는 하이볼 정도로만 가끔 접해본 터라 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예전에 어학연수로 2주 동안 아일랜드 더블린 대학에 머무른 적이 있어서 아이리시 위스키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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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느 카페에서 혼자 아이리시 커피를 마셨는데 위스키 맛을 잘 모르던 때라 술과 섞인 쓰디쓴 커피 맛에 당황한 기억이 남아있네. 커피가 아닌 아이스크림과 위스키를 같이 즐기는 방법도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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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 위스키 시음해 보세요~
바닐라, 오렌지, 벌꿀, 시나몬 향이 좋습니다~
63도의 고도수이지만 아일랜드 전통 방식으로 세 번 증류해서
목 넘김이 부드럽고, 묵직한 바디감과 피니시가 여운이 길게 남아요.
맛있는 아일랜드 위스키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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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받은 위스키 정보를 숙지하고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검색해 보았어. 술의 세계 역시 정보가 방대하고 역사가 깊어서 처음 접하는 술에 대한 공부가 재미있었어. 시음 행사에서 라디오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홍보하는 나를 보면서 MBTI 극 I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행사를 즐기게 되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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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설명하자면 위스키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어. 블렌디드Blended와 싱글 몰트Single malt.
위스키 마스터가 최상의 맛을 조합해서 곡물 또는 옥수수와 보리의 혼합으로 만든 블렌디드로 대표적인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등이 있어. 싱글 몰트는 말 그대로 100% 몰트(맥아)로만 증류해서 만들어진 위스키로 한 증류소에서 발효된 보리만을 가지고 만든 위스키야. 또한 위스키를 숙성시킬 때 어떤 오크통을 쓰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고 오크통에 술을 담기 전에 오크통 안을 태워서 그을린다고 해. 여러 번의 증류와 숙성 등 다양한 과정들을 거쳐서 만들어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
관람객들의 질문도 다양했어. ‘같은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피트*한 것인지’, ‘배합은 몇 퍼센트씩 된 건지’, ‘오크통은 어떻게 썼는지,’ 위스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처음에는 담당자에게 넘겨버렸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숙지하고 나니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져서 점점 재미를 느꼈달까. 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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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습지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이탄(토탄)으로, 위스키 제조 시 보리를 건조할 때 피트를 태워 연기를 입히는 과정에서 특유의 스모키한 풍미가 위스키에 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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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가볍게 위스키를 즐길 수 있게 하이볼 레시피를 알려줄게.
재료는 위스키 60ml, 얼그레이 시럽 30ml, 토닉워터 300ml를 넣고 얼음을 띄워서 즐기면 끝이야. 시럽과 위스키의 비율은 1:2 비율로 맞추면 좋아. 요즘 하이볼을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얼그레이 말고도 라임이나 레몬, 진저 시럽으로 대체해서 여러 가지 맛을 만들 수 있어.
위스키 원액 그대로 즐기고 싶다면 얼음을 띄워서 마시는 온더락On the rocks으로 즐겨도 좋아. 과거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강가의 차가운 돌을 잔에 넣어 술을 차갑게 마셨다고 해서 온더락이라 하고, 이후에는 얼음이 보편화되면서 ‘rocks’가 얼음조각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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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의 짧은 시음 행사였지만 느낀 바가 많은 경험이었어. 술 한 병을 만들기까지의 수많은 과정들과 진심이 담긴 제품 하나를 만들기까지의 정성. 술뿐만 아니라 원하는 상품을 제작하고 완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고. 그리고 그런 제품에 담긴 감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과정들. 세상에는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하나하나에 담긴 시간과 정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네. 그런 귀중한 마음을 알기에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어.
일에 열중하느라 전시를 돌아보지는 못해서 다른 부스의 사진이나 정보가 없네. 혹시 박람회에 다녀간 구독자가 있다면 술과 안주에 대한 또 다른 관람 후기를 남겨주기를~!
술이 익는 깊어가는 가을날,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햇곡식, 햇과일과 술 한 잔 기울이며 담소 나누는 풍성한 한가위 보내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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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마딜로의 절기 한 갈피’는 절기를 소재로 한 단편 소설이야. 실제 사건 및 인물과는 무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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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십니까, 세이.
올여름은 지독히도 덥고 길었는데 몇 번의 비와 수차례의 밤을 지나 그토록 요란하던 여름도 완전히 지나간 모양입니다.
하늘은 어쩔 도리 없이 파랗고 길목마다 구릿한 은행 열매가 떨어져 있습니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흔히들 시골이라고 하면 적막한 밤을 떠올리지마는 실은 이토록 요란한 것을 기억할는지요.
이맘때면 포도송이를 따먹으며 달을 보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손끝에 포도 향이 밸 즈음이면 당신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지요.
그러면 나는 쟁반째로 들고 일어나 마당 한구석에 앙상한 포도 줄기와 껍질을 털어내고는 당신의 어깨를 두드렸지요.
졸린 눈을 비비던 당신의 손에도 포도 향이 흠뻑 배어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나는 지금도 당신을 떠올리면 달과 서늘한 밤공기와 포도 내음이 느껴집니다.
딸아이는 배를 볼 때에 당신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 애는 가을이 오면 일교차 탓인지 꼭 한번씩 감기를 앓고는 했지요.
그러면 당신이 그 애의 머리맡에 앉아 차가운 배를 얇게 썰어 한 조각씩 먹이곤 했습니다.
그 애는 그때마다 더 아픈체하며 한껏 어리광을 피웠노라 내게 몰래 말했습니다.
그것이 엄살이었음을 아마도 당신은 알았겠지요?
손녀 딸애에게 감 씨 떡잎을 알려준 것은 기억을 하나요?
당신이 그 애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감씨를 갈라 요정 숟가락이라며 보여줬지요.
그 자그마한 아이가 보이는 사람마다 감을 먹이며 몇 번이고 씨를 갈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애는 벌써 그때의 자기 만치 자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씨를 갈라 보여주고 있더랍니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던 과일은 그래, 갈색과 풋풋한 녹색이 섞인 탱탱한 대추 알이었지요.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당신은 한손 가득 대추 알을 모아 양 볼에 채워 넣고는 내게도 몇 알 건네며 웃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자그마한 열매가 맛있는지 통 모르겠습니다마는
당신은 늘 대추 알이 떨어지는 가을을 기다렸지요.
당신이 있을 적엔 손 닿는 높이의 대추는 죄 따먹어 갈색으로 물드는 것이 없었는데
이젠 영글어도 따먹는 이가 없어 대추나무가 나날이 무거워 뵙니다.
당신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렇게 과일 바구니가 가득 차는데
왜 이리 텅 빈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온갖 열매가 차오르고 무르익듯이
그리움이란 녀석도 그러는 모양입니다.
무척 보고 싶습니다, 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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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의 사적인 감상문
나의 눈부신 친구,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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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을 떠올리기 좋은 계절 가을, 그중에서도 절기 한로를 지나고 있다. 한로(寒露)가 담은 의미 ‘차가운 이슬’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면에서 ‘추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겪은 일이어서 너무도 익숙하지만 이제는 현재에 속한 내게 낯설어진 과거의 이야기. 역시 추억팔이는 가을이 제철이다.
그렇게나 가까웠는데 이렇게나 멀어져버린 한때의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 모든 인연을 지속할 수는 없는 법이고 오늘까지 연결되지 않은 인연들이 다 아쉬운 것도 아니다. 그때 함께해서 참 좋았지, 하고 떠올리며 웃음 짓고 금방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한 사람, 그 애만은 그렇게 금방 지나치기엔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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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했던 애 신소영은 실제로도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미쳤냐며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한번은 버디버디인가 네이트온으로 둘이 얘기를 나누다가 걔네 언니가 신소영인 척 나랑 채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언니도 ‘네 친구 또라이다, 친구들 중에 제일 웃기다’ 했던 걸 보면 그 집 유머 코드가 나랑 딱 맞았던 것 같다. 나도 신소영이 제일 웃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웃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우리의 대화는 약간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뇌절과 박명수 같은 뜬금 없음이 공존하는 그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낙엽만 봐도 깔깔댈 중 2, 중 3의 나이에 서로를 만나 입만 열면 드립을 쳐댔으니 소녀들이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때 그 애는 키가 아주 컸고 나는 몹시 작은 편이어서 별명이 초딩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나만이 아니라 신소영도 참 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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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크지만 나와 똑같이 어렸던 그 애는 그런데도 참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외향적이긴 해도 내 외향성을 담을 만큼의 에너지가 받쳐주지 않아 기껏 나대봐야 몇몇 친구들 사이에서일 뿐이었는데, 신소영은 지금으로 치자면 MBTI의 대문자 E 성향에, 그에 걸맞은 에너지 레벨과 사회성까지 갖추고 있어 늘 주변에 사람도 일도 많았다. 앞서 신소영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했는데 그 애가 어울리는 다른 친구들도 다들 웃긴 애들이어서 본명으로 이름이 불리는 애가 하나도 없었다. 몽이, 한지 등 다양했는데 다 기억이 안 나네. 내 별명 초딩도 신소영이 붙였고 걔가 제일 많이 불렀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곧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 전보다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그 애는 그 고등학교에서 반장이 되어 자칭 감투 쓰기 좋아하는 자로서 다양한 활약을 했다. 그러더니 대학은 제주도로 훌쩍 떠났고 곧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더니 돌아와서는 고층 빌딩의 회사가 즐비한 곳에 오토바이를 끌고 가 아침마다 스시롤을 팔아 창업 자금을 마련하더니 대학가 앞에 카페를 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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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바쁜 일들을 해내는 와중에도 그 애는 나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했고 햇살이 좋으면 햇살을 즐기러, 비가 오면 비를 맞으러, 계절이 바뀌면 계절을 탐하러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특별한 날은 특별한 날이어서 아무 날은 그냥 아무 날이어서 산으로 궁으로 나가보는 사람이 그 애였다. 세상은 늘 어느 구석에서든 그 애가 오길 기다렸고 호기심과 에너지로 가득한 그 애는 당연하게 그 기다림에 응했다.
한편 함께였던 지역을 떠나 강남의 8학군 동네로 이사 온 나는 다른 삶에 적응해 나가야 했다. 특별히 가난하거나 유난히 내성적이거나 대단히 성적이 낮거나 그런 게 아니었음에도 여러 모로 평범한 축에 속한 나로서도 나는 고등학생 시절이 버거웠다. 조금 가난하고 약간 조용하고 그냥저냥한 성적이, 내 주변에 펼쳐지는 환경과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감당하는 데에 모두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으므로 당시의 나는 뭐가 뭔지 지금처럼 인지하지 못했지만 은은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부모님과 소통이 되지 않는 일상이 반복되며 나는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울었고, 때로는 창문을 열고서만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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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게 힘에 부쳤다. 함께 관악산을 오르고 창경궁에 들르고 호주를 여행한 일이 모두 좋았지만, 그 약속을 잡기에 앞서 늘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 관문에는 어느 절의 입구에서처럼 천장까지 높이 솟아 나를 무섭게 내려다보는 사천왕이 있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질문의 화살들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너 나가 놀 돈 있어? 시간 있어? 그럴 에너지가 있어?
그 애가 밖으로 밖으로 그 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동안 나는 안으로 안으로 나만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상황을 정리하고 공유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그때의 나를 변명해 본다. 나는 어느 날 훌쩍 말레이시아로 교환학생을 떠났고 그 사실을 그 애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인연의 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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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두 주인공 류은중과 천상연은 초등학교 때 서로를 만나 차차 친구가 된다. 많은 것이 달랐던 신소영과 나처럼 그들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성향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발견한 다름은 서로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 그들은 포스터의 문구를 빌리자면 ‘원망과 선망’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대하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여자들의 우정은 때로 꼭 사랑처럼 섬세하고 치열하곤 해서 둘은 서로를 한없이 응원하다가 또 미워하다가, 결국은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친구가 되기로, 그러기로 한다. ‘그러기로 한다’는 의지의 표현을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여러 면에서 서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삶의 지점들이 이미 그들 사이에 켜켜이 쌓여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지점들을 지나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기로, 용서를 구하기로, 친구의 이름을 허락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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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에도 학창 시절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 7공주 써니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유쾌한 리더 춘화와 소심한 전학생 나미의 우정이 참 보기 좋았는데.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그 시절을 지나 25년 후 일곱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서로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각자의 자리에서 춘화와 나미가 조우하고, 다시 7공주의 우정을 되찾아나간다. 개봉 당시 봤을 때도 너무 재미있었고 명절 특선 영화로 다시 만났을 때는 더 반갑게 재미있었던 이 영화가 2011년 개봉작이니 벌써 14년이 지났다. 세월 참.
〈써니〉의 학창 시절이 모두에게 불러일으킨 공감대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 시작점이라면, 이후 춘화와 나미를 중심으로 모두가 다시 만나 연대한다는 판타지가 모두의 마음을 벅차게 해준 절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때의 우리가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사실 대단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님을, 이제는 그걸 다 깨달아버린 쓸쓸한 어른들에게 그러나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음을, 그때의 모양과는 달라도 여전히 함께하는 방식이 있음을 알려주어서 더 특별한 영화. 어디선가 〈써니〉의 OST, 보니 엠의 ‘Sunny’가 들려오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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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엘레나 페란테 열풍(#Ferrante Fever)이 불었다. 그녀의 소설 ‘나폴리 4부작’ 시리즈―〈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시작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인 뜨거운 반응이었는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SNS에 후기를 올리며 해시태그로 #Ferrante Fever를 달아 불길이 점점 더 번져나갔다. 나에게까지 도달한 그 불길에 힘입어 나도 당시 도서관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대여해 푹 빠져 읽었다.
두 친구 릴라와 레누의 유년기와 사춘기에서부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걸친 우정을 담은 이 이야기가 나와 그 애의 것처럼, 은중과 상연 혹은 춘화와 나미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어쩌면 여자들의 우정은 다 이런 모양을 기본적으로 갖추는 걸까? 릴라와 레누 역시 서로 너무도 다른 모습을 통해 서로에게 끌리고 그렇게 함께 세월을 쌓아나간다.
이후 나는 나폴리 4부작을 세트로 구매했으나 전체 책의 분량과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던 당시 겪은 감정 소모에 압도되어 다음 책을 펼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근 〈은중과 상연〉으로 조금 단련이 되었으니 이제 다시 이 책을 펼 때가 된 것인지도. 때마침 독서의 계절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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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과거를 추억하면 귀결되는 어느 곳, 그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겐 늘 신소영이 그곳이다. 상연에겐 은중이, 나미와 써니 멤버들에겐 춘화가, 레누에겐 릴라가 그곳이겠지. 반대로도 똑같이 성립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많이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상대를 떠올릴 테니.
나는 아직도 그 애를 종종 떠올리고 가끔 부질없지만, 결국 하릴없이 어딘가에 있을 그녀에게 손짓한다. 싸이월드가 부활했을 때 내 미니홈피에 그녀를 향한 메시지와 내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는데, 혹시 봤을까? 이 글은 언젠가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의 눈부신 친구는 여전히 곁에 있는지. 부디 그러하기를. 한가위를 밝히는 환한 보름달이 쓸쓸함 대신 꽉 찬 기쁨이기를, 한로의 차가운 이슬이 그리움 대신 반가움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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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같이 듣는 노래
그럼에도 불구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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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생일을 맞이하며 친구에게 들은 질문이 있어. 30대는 어떨 것 같아? 그에 나는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했었네. 좀 더 욕심 부리면서 살래. 욕심은 언제나 많았어. 돈이 많았으면 하는 욕심, 책을 읽을 욕심, 배우고 싶다는 욕심, 기타 등등 마음의 욕심. 그중 몇 가지 욕심은 실천으로 이어져서, 한 악기를 배우는 중이야.(악기 종류는 잠깐 비밀로 할게. 왠지 밝히기 쑥스럽네.) 사실대로 말한다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의 공백을 두고 배움을 이어가고 있어. 처음 20대에 수업을 들었고, 그 이후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두 곳을 거쳐서, 지금은 정확히 2년만에 다시 악기 수업을 하고 있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한 번 배웠으면 됐지, 이 정도면 미련이니 집착이니… 비슷한 단어를 붙일 수도. 그런데 미련도 맞고 집착도 맞아.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야. 함께 수업 듣는 선생님은 11월의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고 계셔. 나는 이번 공연에는 참가하지는 않아. (악기 가르쳐 주는 곳에서 매년 공연을 열고 있다고 해!) 다시 배운 지 얼마 안 됐고,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볼까. 내년까지 욕심을 이어 악기를 배우고 있다면, 그때는 공연을 하게 될지도 몰라. 욕심의 다른 유의어는 용기가 아닐까.
또 욕심은 많지만 어떤 장벽에 부딪혀 사라지기도 해. 바로 게으름, 느림, 5분만 더, 졸림, 깜빡함… 사무실에 일찍 도착하기, 지각하지 않기, 매일 매일 깨끗한 방 유지하기와 같은 어찌 보면 기본적인 습관은 나에게 욕심의 단계이기도 해. 눈 딱 감고 일찍, 빠르게 행동하면 좋을 텐데. 대신 나쁜 버릇을 눈 감아 주고만 있다니. 사실 정말로 욕심을 부려야 할 곳은 이쪽이 아닐까? 내 게으름과 싸워 이길 욕심을.
건강한 욕심을 부리고 싶어. 게으름 대신 부지런할 욕심,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심, 사랑할 욕심. 사랑! 언제였던가, 아는 동생이 ‘첫사랑 해본 적 있어? 첫사랑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봤을 때, 내 마음을 통과해 지나간 몇 사람을 떠올려 보다가 간신히 대답을 하기도 했어. 그 동생의 질문과 나의 대답이 아직까지도 귓구멍, 목구멍에 걸려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때의 대답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첫사랑을 해본 적은 없나 봐.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
미운 짓을 해도 용서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미운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고 싶은 것도 사랑일까?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눈앞에 없어도 잔잔히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도 사랑이려나?
욕심과 사랑은 나란히 두어도 괜찮은 단어일까?
가을도 점점 막바지를 향해 가는데, 이 계절이 끝나기 전까지 ‘사랑’에 대한 고민을 끝마치고 싶어. 사랑이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지만 한번쯤은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 내려도 좋다고 생각해. 이 고민이 끝난다면 나도 ‘첫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영영 ‘첫사랑’은 아닌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이미 사랑을 하고 있다면, 혹은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싶을 때 함께 듣기 좋은 노래. 이번 절기 ‘한로’와 단 한 글자 차이 나는 ‘한로로’의 노래를 두고 갈게.
때때로 한 노래는 그 노래가 가진 시간보다 더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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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꿈꾸던 널 떠나보내고
슬퍼하던 날까지도 떠나보냈네
오늘의 나에게 남아있는 건
피하지 못해 자라난 무던함뿐야
그곳의 나는 얼마만큼 울었는지
이곳의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회로 가득 채운 유리잔만
내려다보네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
아파했지만 또 아파도 되는 기억
불안한 내게 모난 돌을 쥐여주던
깨진 조각 틈 새어 나온 눈물
터뜨려 보네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사랑하게 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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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구구절기 이야기: 추분(秋分)
🗑️내방이나잘치울까: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적 있어. 〈남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 중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자신을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고, 남을 사랑해야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 같아.
듣자마자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어.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다르니까. 자기애와 인류애를 동일한 종류의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어서.
나는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받는 사람이기에 지금의 어려움이나 불안에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과, 멋대로 사는 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라는 제약이 공존하는 그런 주문 같은 것일까?
억눌린 감정이 없는 사람들은 혹시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을까?
🦉부엉이: 나한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듯이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나 자신도 남도 사랑하는 법을 모르지 않을까 생각해.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전부인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받는다면 아이에게 그 사랑이 자연적으로 몸에 배어서 나도 남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지.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 그렇다면 벌써 성인이 된 나 자신에게 현존 수업(지난 추분 이야기) 같은 마음 훈련을 하면서 어릴 때의 나(내면 아이)를 충분히 위로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보내면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충분해지면 타인에게도 흘러가게 될거야. 사랑은 울림 같은 거라 서로 배려하는 아름다운 모습들만 보아도 내 마음에 변화가 일잖아.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변하고 내 주변이 변하면 더 확장되어 퍼져나갈 거야.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사랑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being) 자체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조건 없는 사랑이라 생각해. 어떠한 조건도 없이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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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 이번 절기는 긴 연휴와 겹쳐서 느긋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며칠이 지났지만 각자의 연휴동안의 계획은? 난 평소처럼 뜨개하고 책 읽고 하면서 보낼 것 같아!
🐷돼지: 친구와 1박 2일 부산 여행을 다녀오려고 해. 둘이 마지막으로 여행 갔던 게 2년 전이기도 하고,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속에서 시간 내서 어딘가 다녀오기 쉽지 않은데… 긴 연휴가 찾아왔으니 이 틈에 부산 바람을 듬뿍 담아 올게~
🐆치타: 나는 연휴동안 할 일 리스트를 쭉 써놨는데 아기랑 관련된 게 많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방을 예쁘게 준비해 보려고. 히히 재밌다.
🦉부엉이: 엄마랑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려고 해. 이미 한 번 시청했는데 엄마랑 보면 더 공감되고 좋겠다 생각했거든~. 매 회마다 울었는데 엄마랑 보면 더하겠지~ 둘 다 눈물이 많아서 살짝 걱정이지만 서로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휴지 챙겨야겠다! ㅋㅋ
오늘 구구절기는 어땠어? 구독자의 한로(寒露) 이야기도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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