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절기, 소설이야. 🦖 아르마딜로: 안녕! 구구절기의 멋쟁이 아르마딜로야. 날이 급격히 추워져서 영하를 왔다갔다 하는 요즘이야. 슬슬 패딩을 꺼내 입는 사람들과 거리마다 반짝이는 트리 장식을 보면서, 김장과 난방비 걱정을 하면서 겨울이 왔구나 느끼고 있어. 독감 유행중이라니 감기 조심!
오늘의 절기! 소설(小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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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 태국으로 날아간 부엉이 “사와디카~!”
- 🦖 아르마딜로의 절기 한 갈피 - 털실 공아 작아져라
- 🐆 치타의 같이 듣는 노래 -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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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小雪)이라고 한다.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김장이나 월동준비 등 겨울 채비를 한다. 대개 소설 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진다.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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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나름대로 여행기
태국으로 날아간 부엉이 “사와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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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디카~!” 이 말이 익숙한 사람은 아마 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겠지?
태국의 인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야. “사와디캅”이 더 익숙할 수도 있는데 “사와디캅”은 남자어, “사와디카”는 여자어래.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어. 그래서 구독자 자기에게 태국어로 인사하며 시작해 보았어.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인 데다가 태국은 9년 만에 방문하는 거라 그동안 태국은 어떻게 변했을지 기대하며 준비한 여행이었어. 가는 날이 다가오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앉아서 5시간 정도 지나니 파란 하늘을 드러낸 방콕에 도착해 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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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쿠킹클래스에서 태국 요리를 배웠어. 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음식을 배워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인 것 같아. 이전 여행에서는 해본 적 없는 경험인데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제일 기대되는 일정이었어.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간을 가졌어. 그날 만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한 설명과 직접 구매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것까지 요리에 관심 있는 부엉이에게 최고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 내가 사랑하는 레몬그라스를 바구니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란~! 신선하고 이국적인 재료들이 주는 흥미로움과 즐거움이 있는 시장 투어였어.
요리 교실에서 배운 요리는 똠카가이Tom Kha Gai, 포크 캅프라오Pork Kaprao, 얌운센Glass Noodle Salad 이렇게 세 가지야. 그중에 내게 익숙한 음식은 포크 캅프라오였는데 이번 기회에 만들어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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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달달한 밀크티부터 마시면서 시작하는데 요리사가 직접 말아주는(?) 홍차에 들어간 연유와 설탕의 최대치의 달달함이 더위를 싸악 가셔주고, 차를 따르는 전문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 사진처럼 차를 큰 폭으로 낙차가 있게 따라야 풍미가 더해진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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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요리인 똠카가이는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여 낸 따뜻한 치킨 수프라고 생각하면 돼. 토마토와 버섯, 레몬그라스와 샬롯shallot, 작은 양파 그리고 고수와 라임 잎을 코코넛 밀크에 넣고 끓여 낸 치킨 수프야. 레몬그라스나 고수 같은 이국적인 재료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맛일 것 같은데 일단 똠얌꿍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취향 저격~! 코코넛 밀크를 직접 짜내서 그 물을 사용해서 끓여내고 코코넛 밀크의 부드러움이 잘 느껴진 음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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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만든 요리는 내가 똠얌꿍과 팟타이 다음으로 좋아하고 많이 먹어본 포크 캅프라오Pork Kaprao였어. 다진 돼지고기에 여러 가지 재료를 볶아내서 밥과 함께 즐기는 음식이야. 태국 고추를 기름에 볶을 때 올라오는 매콤한 향 때문에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다가 눈물 콧물도 흘렸어. 그리고 눈물과 콧물을 닦다가 나도 모르게 코와 눈을 만져서 얼굴이 다 얼얼해지는 대참사가 일어났지 모야. 태국 사람들도 한국처럼 매콤한 재료를 많이 사용하더라고. 매운 요리 가짓수도 많아서 맵고 시고 짠맛에 익숙한 듯 보였어. 다이내믹한 맛과 이국적인 향신료의 맛이 태국 요리의 매력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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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새콤달콤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얌운센Glass Noodle Salad과 달달한 디저트 텁팀 크랍Tubtim Krob을 끝으로 요리 수업을 마쳤어. 요리 수업 이후로 나는 태국 음식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태국에서 사온 팟타이 소스로 집에서도 팟타이를 즐겼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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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의 가족들이 휴가를 보냈다는 방파인Bang Pa-In 여름 별장에 다녀왔어. 푸릇한 잔디와 나무들, 분수와 다리를 건너며 차분하게 휴식하기 좋았을 것 같은 장소였어. 내가 왕비? 공주가 된 듯이 드넓은 여름 별장을 사뿐사뿐 걸어 다니면서 산책을 즐겼어. 유럽의 건축물을 닮은 궁전들이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주 평화로운 장소였어. 이곳에 방문할 때는 팔과 다리가 드러나지 않게 긴 옷을 입고 입장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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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방문한 왓마하탓Wat Mahathat 사원은 18세기 미얀마와의 전쟁 중에 사원의 상당 부분이 파손되어서 터만 남은 사원의 자리나 머리나 팔 다리가 잘려나간 불상들이 많았는데 한 나라의 사상을 무시하고 자국민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일부러 불상을 훼손했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중에 잘려나간 불상 머리가 굴러가 보리수나무에 박혔다고 해. 신기하게도 나무가 불상 머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보였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사람의 머리가 부처의 머리보다 낮아야 한다고 해서 앉아서만 촬영이 가능하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전쟁으로 제대로 남아있는 건물이나 장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훼손된 그 모습 그대로도 역사적 가치가 있고 장소가 가진 울림과 힘을 느낄 수 있었어. 불교가 주종교인 태국은 곳곳마다 사원이 많이 있고 길가에 불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주민들이 지나갈 때마다 기도와 절을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
왓마하탓 사원에 방문한다면 태양이 강렬한 한낮에 오는 것보다는 이른 아침에 비교적 선선할 때 방문하는 것을 추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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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 지역의 ‘죽음의 철도the death rail road’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얀마와 태국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인데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전쟁 포로들과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게 되어서 악명 높은 ‘죽음의 철도’로 알려져 있어.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War Cemeteries에는 철도를 건설하는 동안 잔혹하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전쟁 포로들이 묻혀 있어.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은 묘지 정원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분들의 묘석들이 줄지어 있어서 마음이 아려왔어.
그리고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더 잘 알려진 철길까지 가보며 태국에서 미얀마까지 415km를 연결하기 위해 희생된 많은 생명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먹먹해졌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철도를 걸으며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태국 여행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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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태국을 방문한 시기가 등불 풍선을 띄워서 소원을 비는 ‘러이 크라통Loi Krathong’ 축제 기간이었어.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서 보았던 수많은 노란 등불을 하늘 위로 띄워 보내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그런 축제의 날이라니 기대되고 반가웠어. 하지만 하늘 위로 등불을 띄워보내는 것이 환경적으로도 안전상의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어서 지금은 연못이나 호수에 꽃 장식을 하고 초를 꽂아 소원을 빌고 띄운다고 해. 그래서 우리도 주변의 작은 연못을 찾아 축제를 즐기기로 했어. 많은 인파가 몰렸고,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두 모여서 진지한 모습으로 소원을 빌고 연못에 장식을 띄우는 태국 현지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많은 소원들이 연못에 둥실둥실 떠있는 모습을 보니 뭉클해지더라. 모두가 서로의 안위와 행복을 빌며 함께 모여있는 장소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 모든 것이 감사해지는 순간이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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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이 끄라통 Loi Krathong
러이 끄라통은 태국력 12월 보름에 행해지는 축제로 사람들이 바나나 잎으로 만든 조그마한 연꽃 모양의 작은 배(끄라통)에 불을 밝힌 초와 행, 꽃, 동전 등을 실어서 강물이나 운하 또는 호수로 띄워 보내면서(러이) 소원을 빈다. 사람들은 끄라통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떠내려가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출처 태국정부관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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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도 빌고 즐거웠던 여정을 끝으로 태국에서 돌아와 나는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어. 동남아의 덥고 습한 날씨에서 갑자기 쌀쌀한 날씨를 맞이하는 것이 신기했어.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두 계절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서. 단풍이 예쁜 시기에 돌아와서 가는 길목마다 짧은 감탄사가 나오고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함께 단풍을 즐기고. 동네 좋아하는 도서관을 가고 태국에서 사 온 팟타이 소스로 친구와 태국 요리를 해 먹으며 다시 짧은 태국 여행을 다녀온 듯했지.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서 주변의 모습은 소설 절기에 맞게 김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야. 친구랑 팟타이를 해 먹으려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갔는데 싱싱한 배추와 무, 쪽파들이 한 더미씩 쌓여있더라고. 모두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들이었어. 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각 나라의 다른 모습들이 참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인 듯해.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절기 소설에 부엉이의 태국 여행기로 추위를 잠깐 잊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야기 들어줘서 코쿤카~!(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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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마딜로의 절기 한 갈피’는 절기를 소재로 한 단편 소설이야. 실제 사건 및 인물과는 무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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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엉킨 털실을 풀며 마리는 일이 왜 이렇게 됐나 울상을 지었다. 시작은 그래, 취미 부자 장미와의 대화에서부터였다.
“뜨개?”
“응, 고3 때 수능 끝나고 할 거 없어서 시작했다가 재미 들여서.”
겨울마다 옷 하나씩은 뜨는 것 같아. 작년엔 효도 뜨개로 부모님 스웨터 한 벌씩 해드렸어. 이게 또 성취감이 장난 아냐. 늘어나는 게 금방금방 눈에 보이고 직접 만든 옷 입고 다니면 엄청 뿌듯하다? 귀엽고 예쁜 도안도 진짜 많아. 나 지금 입은 것도 내가 뜬 거야. 예쁘지? 장미는 열정적인 판매사원처럼 뜨개의 온갖 장점을 늘어놓았다. 그에 종잇장처럼 팔락이는 귀를 가진 마리는 홀린 듯이 답했다.
“옷은 어렵진 않아? 목도리 정도는 한번 떠보고 싶은데.”
초등학생 때 유행했던 뜨개 열풍에 마리도 목도리 뜨기에 도전했던 기억이 났다. 실은 뻣뻣하고 뾰족한 대나무 바늘을 힘주어 밀어내느라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마리는 목에 한 번 감아볼 정도도 뜨지 못하고 금세 포기했더랬다. 미련인지 뭔지 뜨개 이야기가 나오자 마리는 직접 만든 목도리가 갖고 싶어졌다. 장미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는지 장미는 마리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답했다.
“목도리는 어린 애들도 뜨지.”
마리뿐 아니라 장미도 어릴 때 목도리 뜨기에 성공한 경우는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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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공유해 준 목도리 도안 중 맘에 드는 것을 고른 마리는 바로 뜨개샵에서 실과 바늘을 샀다. 장미에게서 코를 잡는 방법과 겉뜨기, 안뜨기와 같은 간단한 기법을 배우고 마리는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처음 코를 걸었을 땐 그저 막대기에 이상하게 실을 감은 것처럼 보여 이게 어떻게 목도리가 될까 싶었다. 몇 시간 동안 도안을 따라 손가락 두 마디만큼을 뜨자 길어졌다는 기쁨과 지금 뜬 것의 수십 배를 떠야 한다는 막막함에 마리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어렸을 때처럼 손가락이 얼얼하지 않아서 같은 이유로 포기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인내심이나 집중력 부족으로 관두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목도리는 좀 재미가 없어. 기법도 단순하고 너무 길잖아.”
마리가 하소연하자 장미는 계약서의 깨알같이 적힌 악성 문구를 뒤늦게 알려주듯이 답했다. 덧붙여 어릴 때 문방구에서 팔던 건 막바늘이라고 불리며 마찬가지로 문방구에서 팔던 아크릴 실은 뻣뻣하여 아프고 불편한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뜨개는 장비발이라며 웃는 장미를 보며 여러 가지 의문은 풀렸지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된 마리는 장미가 옥 장판을 팔아도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덩달아 오기가 붙어 반드시 목도리에 성공해 보이겠노라 다짐했다.
이후 마리는 커다란 가방에 실과 바늘을 챙겨 다니며 짬 날 때마다 뜨개를 했다. 점심을 먹고 다음 강의 전까지의 빈 시간이나 공강 시간뿐만 아니라 통학하는 전철 안에서 자리가 나면 잽싸게 앉아 주섬주섬 뜨개를 꺼내 들었다. 언제나 길어질까 싶던 목도리는 며칠 새 마리의 팔 하나만큼 자랐다. 짬짬이 뜨느라 집중이 부족했던 것일까. 문제는 여기서 생겨났다.
“어? 너 여기 꽈배기 방향 틀렸다.”
마리를 뜨개로 꼬드기고 웃으며 구경만 하던 장미는 마리의 목도리를 보다가 말했다. 마리는 하얗게 질려 장미가 가리킨 목도리의 무늬를 살폈다. 정말 꽈배기가 반대로 꼬여 있었다.
“헉, 어떡해? 이거 고칠 수 있어?”
“어떡하긴?”
장미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안쓰러운 눈을 하고는 반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쩐지 사악한 미소였다.
“풀어야지.”
그것이 마리가 울면서 엉킨 실을 풀게 된 이유였다. 장미는 틀린 데까지 풀고 다시 바늘에 코를 걸어 고쳐서 풀면 된다고 간단히 이야기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마리가 장미의 말대로 목도리를 풀었다가 다시 코를 주웠을 때 풀린 실은 꼬불꼬불해져 저들끼리 뒤엉켰다. 마리는 조금 뜨다가 실을 풀고 다시 조금 뜨다가 실을 풀었다. 더는 조금씩 풀리지도 않아 엉킨 실을 풀며 마리는 뜨개의 고난은 아픈 손가락도 끝없이 길어지는 것도 아닌 풀어낸 실에 있음을 깨달았다. 인고의 시간 끝에 간신히 마지막 매듭을 풀어냈을 때는 저도 만세를 외칠 뻔했다. 그리고 마리는 풀어낸 실 끝에 매달린 털실 공을 봤다.
“언제 이렇게 작아졌지?”
목도리를 처음 뜨기 시작했을 때는 성인 남자의 양 주먹을 합친 것보다 커다랬던 털실이 지금은 마리의 양 주먹만큼 작아져 있었다. 어느 정도 길어진 시점부터는 목도리가 자라는 것이 잘 안 느껴져 성취감도 줄어들던 참이었다. 마리는 다시 바늘을 쥐고 뜨개를 시작했다. 금방 풀어낸 만큼 다시 떠서 꼬불꼬불한 실도 사라졌다. 뜨개질 속도에 따라 조금씩 구르는 털실 공을 보며 마리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털실 공아, 작아져라. 작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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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치타의 같이 듣는 노래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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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라는 연말의 인사말이 크게 와닿았던 기억이 없다. 그냥 관용어구처럼, 누구나 다양한 매일을 겪으며 살아가니까 으레 하는 말이려니 여겼다. 아홉수니 삼재니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누군가의 한탄도 머리로만 겨우 이해할 따름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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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삼재 같은 건 잘 모르지만,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 편이지만,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올해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월에 유산을 했다. 처음으로 찾아와준 아기가 아기집만 만들고 8주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에게서 떠났다. 오래 정이 들지 않아서, 아기를 본 것이 아니어서 덜한 슬픔이었겠지만 이런저런 점을 고려해 꾸역꾸역 완충제를 만들어도 마음이 무너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장관처럼 펼쳐진 가을 낙엽을 보며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처음 알렸던 기쁨의 순간과, 태명을 뭘로 지을까 둘이 알콩달콩 고민했던 시간, 처음 아기집을 보고 신기함에 입을 헤 벌렸던 장면 들이 의사의 “이를 어쩌나” 한마디와 함께 허물어지고 전혀 알지 못했던 수술과 주사와 산모가 아닌 환자로서의 병원 방문이 반복되며 그냥 와앙 울어버리게 되는 때가 있었다. 가버린 아기에게 남편이 쓴 편지를 읽으며, ‘홍시야 보고싶어 사랑해’ 글자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누르며, 본 적 없는 누군가를 향한 사무치는 마음이, 이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그래도 그대로 공유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너를 생각했다는 것 빼고 막상 아무 빈자리도 없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다시 살면서, 동시에 무엇을 잃어버린지 몰라 자꾸만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는 그런 날들을 견뎠다.
3월에는 한 달간 돌봤던 유기견과 이별했다. 2월 초 가장 추웠던 무렵 콩이를 산책시키다가 우연히 만난 백구는 당시 채 6개월이 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였는데, 콩이가 산책을 나갈 때마다 달려와 함께 산책을 했다. 몇 년을 살면서 있는지도 몰랐던 앞산 둘레길을 백구와 콩이와 셋이 매일 함께 오르며 매일 조금씩 더 친해졌다. 볕 좋은 무덤가에서 백구와 콩이가 함께 놀면 나는 아이들을 따라가다가 이름을 불렀다가 우리는 다 같이 마른 잔디에 앉아 쉬었다. 사람과 강아지를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경계심이 컸던 백구는 처음엔 자신이 아닌 내가 다가가면 늘 뒷걸음질을 쳤지만 조금씩 조금씩 곁을 내주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몇몇과 매일 물과 사료와 핫팩을 갈아주고 남편과 함께 커다란 집을 설치해 주며 밤낮으로 아이를 살폈다. 문산읍 당동리에서 만나 ‘당동이’라고 이름 붙였던 백구는 근처로 가서 “당동아!” 소리쳐 부르면 30초가 지나기 전에 꼬리를 흔들며 나타났다. 사람들과 임보처를 찾기도, 구조를 계획하기도 했고 여름까지도 당동이가 그곳에 혼자 있어야 하면 우리가 데려가자고 남편과 이야기까지 마쳤던 참이었다. 와중 3월 초에 우리는 양주로 이사를 왔고 이사온 바로 다음날 청천벽력처럼 걸려온 전화에서는 당동이가 차에 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친듯이 차를 몰아 달려간 그곳에서 당동이는 이미 사라져있었고, 같이 그애를 챙겼던 분들과 당동이의 흔적들을 정리하며 나는 뒤돌아 통곡했다. 몇 달이 지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어떤 이별보다 갑작스러운 것이었기에, 늘 통나무처럼 가만히 깊은 잠에 들었던 순하고 둔한 내 남편은 아주 작은 기척에도 벌떡 깨어나 아빠를 부를 만큼 민감하고 연약해졌다. 눈을 감는 것이 무섭다고, 이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전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고, 아빠가 내 마지막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간신히 나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내며 울던 그는 병원과 장례식장과 이후의 모든 과정에서 맏아들로, 상주로, 엄마와 여동생의 보호자로 끊임없이 든든하고 굳건하게 서있어야 했다. 사락이의 임신 중기에 들어서며 근종통으로 병원에 자주 실려갔던 나까지 챙기며 고작 서른 몇 살의 그는 너무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다.
잠들면 여전히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한 남편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기도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가 겪을 슬픔의 백분의 일도 대신 가져가줄 수 없다는 것이 내내 미안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옆에 있는 것뿐이겠지만, 우리가 처음 겪는 이런 것도 삶이어서 배워나가야 한다면 언제까지라도 함께 배워나갈 수 있기를…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2주 전에는 엄마에게 사고가 났다. 남편이 2박 3일로 예비군을 가는 때에 맞춰 엄마랑 나랑 우리 집에서 하루 같이 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고, 실제로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완벽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리 꺼내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랑스러운 오너먼트들을 장식하고 같이 드라마를 보고 몇 끼의 맛있는 식사를 하고 강아지들을 만지고 사진을 찍고… 그러는 내내 계속계속 수다를 떨면서 오랜만에 단둘이 여행을 떠난 것처럼 신나는 ‘모녀 타임’을 보냈다. 딸들에게는 엄마에게 털어놔야 하는 수다량이 태초부터 할당되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엄마 앞에서 엄마를 자꾸 부르고 껴안고 이상한 춤을 추고 해야만 마음이 충족되는 DNA 같은 게 몸 어디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나는 마음껏 딸이기만 하면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이제 콩이와 탄이의 마지막 산책을 한 뒤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엄마를 보내드리기로 한 시점에, 그 산책길에서 엄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넘어져 쓰러졌다. 탄이가 짖는 소리에 뒤 돌았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았고, 강아지들을 나무에 허겁지겁 묶은 뒤 발견한 엄마는 피범벅이 되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주변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고 강아지들을 집으로 보내고 아빠와 남편이 달려오고 엄마가 병원까지 이송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행히 엄마는 엊그제 수술을 마치고 이제는 회복할 일만 남았다. 회복의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사고 전후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억이 돌아왔고, 뇌에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사고와 수술의 흔적이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 다행이라는 말 같은 건 나오지 않지만, 그냥 자꾸 온갖 것이 후회되고 미안하고 속상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웃고 이야기나눌 수 있는 건 최고의 다행이자 감사할 일이다. 그걸 이제는 안다. 아마 올해의 다사다난을 겪기 전의 나라면 이만큼 알지 못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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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같은 건, 사고 같은 건 왜 겪어야 하나 생각해 본다. 남편은 엄마의 사고 앞에서 내가 휘청거릴 때마다 괜찮다고, 다행인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마음에 맺힌 슬픔이 어떤 것일지 알기에 한마디 한마디가 말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주변에서 기도해 주고 연락해 주었던 지인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슬픔을 삶의 곳곳에서 겪으며 이제는 그것을 딛고 켜켜이 쌓인 뜨거운 위로의 말을 내게 건넸을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되었다. 이별이나 사고에 다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놈의 의미를 배우기 위해 이런 아픔들을 겪어야 한다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원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면서 괴로운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 거라면, 그게 삶의 속성 중 하나라면, 감사하고 배우는 것 말고는 인간이 더 할 수 있는 나은 선택도 없는 듯 보인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가 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하고. 덤덤하고 당연한 인사처럼, 그러나 각자의 뜨거운 슬픔과 감사를 품고서.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이연실의 ‘목로주점’으로, 어릴 때 가족들이 다 같이 노래방에 갔을 때 엄마가 불러주었던 엄마의 애창곡이다. 처음 들었을 때 노래가 너무 좋아서 동생이랑 둘이 눈이 땡그래져서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나는 어쩌면 엄마보다 더 많이 이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며 살아온 것도 같다.
주점에 가본 적도 없고 월급도 적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어린 때에 들었던 노래임에도 어쩐지 이 노래가 응원처럼 다정하게 그려졌다. 추운 겨울날 음식의 열기와 사람들의 취기가 달큰하게 오른 따뜻한 공간. 마주 앉은 두 친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해 겪은 모든 기쁘고 슬펐던 일들이 과거가 되어 지나가고, 지나갔음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순간. 노란 빛의 삼십 촉 백열등이 어둑어둑한 공간을 겨우 밝히고 있지만, 겨우 밝힌 연약한 그 빛이 그럼에도 끊임없이 흔들흔들, 그곳을, 그곳의 마음들을 밝히고 있는 모습. 이 노래를 알게 된 지 10년이 더 된 이제야 처음보다 조금 더 노래를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탄다아아아아아, 그네를 탄다, 바라보는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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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쳐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 마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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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 할로윈과 수능을 지나고 곳곳에 트리가 보이면서 슬슬 연말 기분이 들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으면서도 들뜨는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봐. ‘나도 얼른 트리 꾸며야지!’ 하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트리 장식이 뭐야? 나는 캔디 케인이라고 하는 지팡이 모양 사탕 장식을 좋아해!
🐷돼지: 트리 전체를 휘감은 전구 장식! 트리가 클수록 커다랗게 번쩍이는 모양도 좋아하고, 작을수록 귀엽고 앙증맞게 반짝이는 것도 좋아해~
🦉부엉이: 트리 장식을 안 해본지 꽤 된 것 같아. 어릴 때는 아빠랑 만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종이로 된 장식을 직접 만들다가 가위에 손을 베였었어. 상처가 깊어서 피도 많이 나고 하필 손을 다쳐서 생활하기 불편했던 기억이 트리 장식을 생각하면 제일 처음으로 떠오르는 기억이야. 다시 트리 장식을 준비한다면 이번엔 안 다치고 잘 만들 수 있을듯한데. 헤헤. 각자가 만든 트리 구경하러 가보고 싶다~!
🐆치타: 솜을 하나하나 뜯어서 눈송이처럼 얹는 걸 좋아했어. 그리고 꼭대기에 별 올리는 거랑! 올해는 집에 11월 초부터 커다란 트리에 화이트 테마의 여러 가지 오너먼트를 장식해 놓았어. 가장 좋아하는 걸 하나만 꼽자면 요즘은 노란빛 말고 희고 푸른빛의 전구가 참 좋은 것 같아. 우리집에 놀러 와~ 불멍 물멍에 이은 트리멍이 가능하답니다!
오늘 구구절기는 어땠어? 구독자의 소설(小雪) 이야기도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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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동과 소설을 지나 대설이 오면, 구구절기 발송 2주년이야!
2주년 맞이 구구절기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래 내 이야기 나누기를 통해 전해줘. 축하 메시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구구절기 멤버들에게 궁금한 점 등 모두 좋아!
2025년 12월 8일 월요일 대설 편에서 구구절기 2주년 특집으로 구독자 자기를 만나러 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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